지난 주말 남한산성을 돌고 내려오다 한 카페 화단에서 꽈리 무리를 보았다. 부푼 오렌지색 꽈리 열매들이 꽃보다 더 예쁘게 무더기로 달려 있었다. 요즘엔 보기 힘든 식물이라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냈다.
꽈리는 가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6~7월 잎 사이에서 노란색을 띤 흰색으로 꽃이 피지만 잎에 가려 있는데다 작아서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꽃받침이 점점 자라 오렌지색으로 부풀면서 눈길을 끄는 식물이다. 풍선 안쪽에 딱 방울토마토 같이 생긴 열매가 있다. 이 열매는 먹을 수 있다.
꽈리 열매는 예전에 특별히 갖고 놀 장난감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감이었다. 잘 익은 꽈리 열매를 손으로 주물러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 바늘이나 성냥개비로 꼭지를 찔러서 속에 가득한 씨를 뽑아낸다. 속이 빈 꽈리 열매에 바람을 불어넣은 다음 입에 넣고 혀와 이와 잇몸으로 가볍게 누르면 ‘꽈르르 꽈르르’ 소리가 난다. 꽈리라는 이름은 이 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완서의 단편 ‘그 여자네 집’에 이 꽈리가 연인을 지키는 ‘꼬마 파수꾼의 초롱불’로 등장하고 있다. 이 단편은 일제의 징병, 위안부 모집, 그리고 남북 분단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만득이와 곱단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은 한 낭송회에서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낭송한 것을 계기로 같은 동네에 살던 만득이와 곱단이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잘 어울려서 마을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연인 사이였다. 만득이가 곱단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꽈리가 나온다.
<곱단이는 나에게 가끔 만득이가 보낸 편지를 보여 줄 적이 있었다. (중략) 그 중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곱단이네 울타리 밑의 꽈리나무를 ‘꼬마 파수꾼들이 초롱불을 빨갛게 켜들고 서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 거였다. (중략) 꽈리란 심심한 계집애들이 더러 입 안에서 뽀드득대는 것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잡초에 불과했다. 우리집 울타리 밑에도 꽈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흔해빠진 꽈리 중 곱단이네 꽈리만이 초롱에 불켜든 꼬마 파수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예쁜 연애소설인듯 시작한 소설은 급격하게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치닫는다. 두 사람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 무렵, 만득이가 일제의 징병에 끌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곱단이가 기다리는 동안 일제가 과년한 딸들을 다짜고짜 정신대로 끌고 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곱단이네는 그 고운 딸을 다급하게 신의주 재취 자리로 시집보낼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돌아온 만득이는 동네 다른 처녀와 결혼해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북 분단으로 만득이와 곱단이는 영영 만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중국 단체관광을 갔다가 압록강 유람선을 탄 장만득씨는 신의주를 바라보면서 통곡을 하고 말았다. 단편이지만 위안부 문제를 다룬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사실적으로 피해자들 고통을 담아낸 글인 것 같다. 꽈리는 두 사람의 사연을 더 애틋하고 안타깝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