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파밸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메도우드’ 총주방장(총괄 셰프) 출신인 카티아나 홍이 좀 더 대중을 겨냥한 식당 ‘차터 오크’를 총괄하면서 촬영한 모습. 부부가 한국 음식과 문화를 관찰하며 느낀 ‘양반’은 서양 귀족들의 젠체하는 양반이 아닌, 주민과 나누고 즐기는 검소한 모습에 방점을 뒀다. /카티아나·존 홍 부부 제공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K푸드’는 놀라울 만큼 유명해졌어요. 이젠 문화가 어우러져야죠. 한국의 수준 높은 예술적 성취와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길거리 감성을 뒤섞는 것이죠. 다음 세대를 위한 K푸드는 한국의 ‘정신’이 담겨야 해요. 저희는 그것이 선비 정신, 양반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2014년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메도우드(meadowood) 총주방장에 오르며 명성을 날린 한국계 미국인 카티아나 홍(38)과 역시 미슐랭 3스타 총주방장인 존 홍(34) 부부 셰프는 요즘 한창 들떠 있다.

/카티아나 홍 제공 태어난지 3개월만에 입양된 카티아나는 어린 시절 미국 기계체조 주니어 올림픽 국가대표단에도 들어갈 정도로 ‘미국인’으로 자랐다. 영화 ‘베놈’ 등에 출연한 할리우드 스타 레이드 스콧이 그녀의 양오빠다.

두 사람은 미국 LA 에서 ‘양반 사회(Yangban Society)’라는 이름으로 ‘한국계 미국식’ 델리(deli)를 오픈한다. 5000평방피트(약 140평) 규모로 식당과 함께 작은 마트와 스트리트 패션·뷰티 매장까지 함께 입점한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캘리포니아의 최고급 레스토랑 주방을 책임졌던 가장 유명한 셰프 부부가 오랜 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이달 중 매우 창의적인 델리를 선보인다”고 소개했다.

/카티아나&존 홍 부부 제공 미국 산타모니타 미슐랭 2스타 멜리스 레스토랑 등에서 실력을 가꾼 카티아나는 2014년 미국을 대표하는 셰프 크리스토퍼 코스토가 운영하는 '메도우드'의 총괄 셰프를 맡으며 미국 미슐랭 3성급 레스토랑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괄 주방장(chef de cuising)이 됐다. 존 홍 역시 멜리스를 거쳐 실력을 인정받으며 카티아나의 뒤를 이어 '메도우드' 총괄 셰프로 수년간 미슐랭 3스타를 유지했다.
/카티아나 홍 제공
/카티아나 홍 제공 .
/카티아나&존 홍 부부 존 홍(맨 왼쪽)과 카티아나(왼쪽서 세번째) 부부가 레스토랑 동료들과 찍은 사진

“저희가 추구하는 양반이란 공동체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책임지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세대의 아시아계 미국인들 모두 양반이 되길 희망해요.” 최근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한국 ‘양반’의 긍정적인 측면을 위트 있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최고급 식당을 거쳤지만, 이들이 내놓는 ‘밥상’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9첩 반상이나 초호화 음식이 아닌, 서민적이고 검소한 밥상이 양반 정신의 본질이라는 것. 그렇게 간장과 마늘을 곁들인 로티세리 치킨, 짜장밥 느낌의 볼로네제(고기 다진 것을 많이 넣은) 소스밥, 김치 삼겹살 포솔레(pozole·멕시코식 수프) 등의 메뉴가 탄생했다. 고가(高價)의 격식보다 대중을 택한 것. 그 안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거치며 익힌 조리법들이 집약됐다.

지난 2014년 결혼한 카티아나&존 홍 부부의 싱그러운 모습. /카티아나·존 홍 부부 제공

외모도 성(姓)도 한국계지만 둘이 한국을 접한 방식은 달랐다. 서울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미국 뉴욕의 유대계 가정으로 입양된 카티아나 홍(결혼 전 카티아나 스콧)은 여름 캠프를 통해 한국 문화를 조금씩 접했다. 카티아나의 든든한 정신적 지원군은 외할머니. 백인이었지만 그 역시 입양아였다. “매우 강하고 겸손한 분이셨죠. 외할머니는 생모를 찾았지만 원하던 경험이 아니었죠. 저한테도 생모를 찾는 것이 반드시 제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어요. 스스로 평화와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요.”

카티아나에게 한식은 그녀의 뿌리를 확인케 해주는 일종의 DNA였다. 10대 중반 생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에서 그녀는 환대보다 냉대를 먼저 경험했다.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카티아나를 향해 “한국 애인 줄 알았더니 아니잖아”라며 무심하게 내뱉는 길거리 사람들의 중얼거림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그 후 오랜 시간 나의 문화에 대해 흥미를 잃었어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요.” 11년 전 남편을 만난 뒤 그녀는 다시 한국의 피가 뜨겁게 흐르는 걸 느꼈다. 한국 음식부터 파고들었다. 요리는 그 자체가 역사이자 핏줄이고 유대감이었다.

/카티아나&존 홍 부부 제공 카티아나와 존 부부가 우리 식으로도 결혼한 모습.

시카고 교외에서 태어난 교포 2세 존은 “영화 ‘미나리’의 배경을 농장에서 세탁소로 바꾼다면 정확히 우리 집 이야기”라며 웃었다. 설렁탕·떡국·육개장 등 국밥류를 ‘솔푸드’(soul food·영혼의 음식)로 꼽은 존에게 요리는 정신적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피부색 때문에 느꼈던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동서양을 넘나드는 창의력으로 승화시켰다. 2019년 딸 알레시아가 태어났고, 둘은 그동안의 경험을 담아 자신들만의 ‘꿈의 식당’을 열기로 했다.

존 홍 쉐프가 지난 2016년 미국의 ABA(Asian Business Association/아시아경제인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셰프'를 수상하면서 부인 카티아나와 함께 찍은 사진. 존 홍은 2016년 메도우드 총괄 셰프가 되면서 3년 동안 레스토랑의 미슐랭 스타 3개를 유지했고 2015년 APAR가 선정한 '나파밸리의 메이커'에 선정됐고, 2016년에는 아시아경제인협회 올해의 셰프에 선정돼 어린 시절의 음식을 제대로 현대화하려는 열정을 반영했다. 10년 간 미슐랭 3스타를 도맡다시피 한 메도우드는 얼마 전 미 나파밸리 산불로 레스토랑이 모두 타버렸지만 최고의 음식을 선보이려는 직원들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양반 사회 카티아나&존 홍 부부가 선보이는 '양반 사회'의 여러 로고 중 하나. 양반 수퍼, 양반 델리 등 다양한 로고로 선보이지만, 마치 태극기 청홍를 재해석한 듯 눈에 띄는 대비적 색감으로 발랄한 느낌을 살렸다.

“영화 ‘미나리’처럼 지금도 고춧가루와 매실은 시어머니가 보내주셔요. 시식회를 위해 존의 할머니가 김과 곶감 등을 보내주셨죠! 두 가지의 매우 다른 렌즈를 통해 우리의 문화를 확인하고, 연결하고,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어요. 재료 수급부터 지속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요리를 대중화해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