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근대사를 그린 소설이다. 카불의 부잣집 소년 아미르와 그의 하인 하산은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지내며 컸다. 그러나 하산은 목숨을 걸고 아미르를 지켜준 반면 아미르는 하산이 위기에 처했을 때 외면했다. 아미르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하산에 도둑 누명을 씌워 집을 떠나게 했다.

아미르는 1980년 아프간 공산화를 계기로 아버지와 함께 카불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했다. 20년 후인 2001년 어느날 아미르는 하산이 죽고 그 아들이 고아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미르가 이번에는 용기를 내 하산의 아들을 데려오기위해 탈레반 치하에 있는 카불에 들어가는 내용이다.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아들 구출을 통해 속죄하는 과정을 카불 집 북쪽 언덕에 있는 석류나무가 지켜보고 있다. 먼저 아미르와 하산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시절이다.

<방과 후에는 하산과 함께 책을 한 권 들고 집 북쪽에 위치한 언덕에 올라가곤 했다. (중략) 묘지 입구에는 석류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알리의 부엌칼로 나무에 우리 이름을 새겼다. ‘카불의 황제인 아미르와 하산.’ 석류나무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작업이었다. 방과 후에 하산과 함께 석류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피처럼 붉은 석류를 땄다. 열매를 먹고 난 후에는 풀잎에 손을 닦고서 하산에게 책을 읽어주곤 했다.>

요즘 석류나무 열매 모습.

아미르가 하산을 배신한 다음 죄책감에 시달리며 하산과 갈등을 겪는 대목에도 석류나무가 나오고 있다.

<하산을 향해 석류 한 개를 휙 던졌다. 석류가 하산의 가슴에 맞고 터지자 빨간 과육이 튀었다. 하산이 놀라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너도 던져봐!”

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중략)

몇 번이나 그에게 석류를 던졌는지 모른다.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멈추자 하산이 총살 집행 군인들에게 총을 맞은 것처럼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치고 절망해서 털썩 주저앉았다.>

석류.

아미르는 20년 후 하산의 아들을 구하러 카불을 찾았을 때 석류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랐다.

<버려진 묘지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묘지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늙은 석류나무도 있었다. (중략) 하산은 편지에 몇 년 동안 석류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적었다. 잎이 다 떨어진 시든 나무를 바라보면서, 과연 앞으로 열매를 맺을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중략) 쭈그리고 앉아서 나무줄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찾았던 것이 보였다. 새겨놓은 글씨는 거의 완전히 희미해져서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어쨌든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카불의 술탄인 아미르와 하산.’>

석류나무 꽃.

아프가니스탄은 인접한 이란·파키스탄과 함께 석류나무가 많은 곳이다. 몇 년 동안 열매조차 맺지 못하는 석류나무가 탈레반에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 석류나무는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과 함께 카불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만행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소설 곳곳에 탈레반에 고통받는 아프간 사람들 얘기가 담겨 있다. 아미르가 다시 카불에 갔을 때 거리는 무너진 건물들과 구걸하는 거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식당 옆에 교수형 당한 시체가 매달려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탈레반이 간통했다는 이유로 젊은 남녀를 축구경기 도중 돌을 던져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산도 아미르의 집을 지켜내려다 탈레반에게 총살당했다. 어쩌다 저런 괴물들이 한 나라를 접수하는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석류나무 꽃.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설 주인공처럼 카불에서 태어나 198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연을 쫓는 아이’(2003년)는 그의 첫 장편이다. 아프간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2007년)도 유명하다. 그는 얼마전 CNN 등과 인터뷰에서 아프간 난민을 외면하지 말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그는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 수중에 넘어간 데 대해 “고통스럽다”며 “탈레반의 깃발이 카불에 나부끼는 걸 보는 건 정말 가슴 찢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프간을 이해하겠다는 목적으로 내 소설을 (일부러) 읽지는 말아달라”고도 했다. 소설로 한 나라를 이해하려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면 아프간 사태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설 시작과 끝이 연 날리는 장면인데 소설 제목은 여기에서 따온 것 같다.

석류나무는 내한성이 약해서 서울 등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지난주 남해안을 여행하다 벌써 빨갛게 익어 벌어지기 직전인 석류를 보았다.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은 직후라 그런지 신맛 연상으로 침이 고이는 대신 탈레반 치하에 있는 아프간 주민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