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시네마 클래식’은 영화와 음악계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는 ‘이야기 사랑방’입니다. 전·현직 담당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재 뒷이야기와 걸작 리스트 등을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올림픽 관련 영화 이야기입니다.

인종과 국가의 장벽을 넘어 온 세계 젊은이들이 순수한 체력과 기술을 겨루는 우애와 평화의 스포츠 축제. 어릴적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위인전에서 읽었을 것 같은 말을 아직도 믿는 건 아니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은 너무 많은 비밀을 까발려 버렸습니다. 현대 올림픽이란 게, 결국 정치이고 장사였다는 비밀입니다.

인기가 바닥인 일본 총리는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11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반등의 발판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관련 경비만 1조6400억엔, 인프라 관련 간접 비용도 3조엔 이상 들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제와서 물리기엔 너무 늦은 겁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IOC대로 주판알을 굴렸겠지요. 이번 올림픽 중계권료가 무려 26억 달러를 넘는데, IOC 수입의 73%라고 합니다.

돈과 정치 뿐이겠습니까. 이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 위에선, 편견과 질시, 결핍과 증오 같은 사적 감정들도 극단으로 치달아 흘러 넘칩니다. 민족적 원한이 피를 부르는 복수의 연쇄를 낳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이 흘린 땀과 눈물로, 올림픽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들어있는, 올림픽과 연관된 영화 네 편을 소개해드립니다. 이 영화들 속 이야기, 모두 실화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있지.”

■아이, 토냐 (I, Tonya·2017)

감독 : 크레이그 길레스피

주연 : 마고 로비, 세바스찬 스탠, 앨리슨 재니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앞둔 1994년 무렵, 미국에서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는 최고였습니다. 그 인기의 정점엔 물과 불, 빛과 어둠처럼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딴 판인 두 스타, 낸시 케리건과 토냐 하딩(마고 로비)이 있었습니다. 훗날 전설이 되는 미셸 콴 조차 두 사람 앞에선 떠오르는 샛별에 불과했던 시절입니다.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낸시 케리건이 귀엽고 우아한 ‘빛’이자 ‘물’이었다면, 오레건에서 태어나 백인 최하층 엄마의 폭압 아래서 오직 스케이트 재능에 모든 걸 걸었던 토냐 하딩은 ‘불’이자 ‘어둠’이었습니다. 손톱에 검푸른 매니큐어를 바르고 집에서 만든 의상을 입은 채 비루한 자기 인생에 대한 분노를 빙판 위에서 폭발시켰지요. 토냐는 최고난도의 트리플 악셀 점프를 처음 성공시킨 스케이터였지만, 지금은 다른 센세이션으로 기억됩니다.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대표 선수 선발전을 며칠 앞두고 라이벌 소녀 낸시 케리건이 습격당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뻔 한 사건에 토냐 자신이 연루돼 유죄 선고를 받으며 영원히 빙판에서 축출당한 겁니다.

시네마 클래식/ 올림픽 관련 영화 네 편 : 아이, 토냐 (I, Tonya·2017)

사람의 마음은 아닌 척 해도, 늘 빛보다 어둠에, 차가운 물보다 뜨거운 불에 끌리게 마련인지도 모릅니다. 마고 로비가 연기하는 영화 속 토냐는 ‘나쁜 여자’의 매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자신이 그저 그런 ‘백인 쓰레기(white trash)’가 아닌 걸 증명하고 싶은 토냐는 일거수 일투족 바싹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하고 위태롭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야(It wasn’t my fault)”라는 혼잣말을 입에 달고 있죠. 하지만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를 미끄러져 나갈 땐 자신이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답다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마고 로비는 토냐 그 자체인 것처럼 그 불균형을 스크린 위에 현신해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를 들여다 보며 관객을 향해 말하는 토냐는 파격적입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난 이런 짓을 한 적 없다니까.”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관객을 윽박지르는 듯 합니다.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고, 어떤 사회적 편견도 없이 토냐의 삶을, 피겨라는 스포츠와, 라이벌 관계의 압박과, 그 모든 억압과 편견과 질시를 객관적으로 보고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이죠.

이 멋진 배우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 여자친구 ‘할리 퀸’으로만 기억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 실사영화 ‘크루엘라’도 연출했습니다.

◇ 경기장 안과 밖에서 각자의 싸움을 싸웠던 세 남자

■폭스캐처(Foxcatcher·2014)

감독 : 베넷 밀러

주연 :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마크 러팔로

이 이야기도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실화였으니까요. 올림픽 대표 선수를 키워내겠다며 ‘폭스캐처’라는 레슬링팀을 만들어 육성하던 억만장자 듀퐁 가문의 상속자 존 듀퐁(스티브 카렐)은 팀의 코치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총으로 쏴 살해합니다. 그는 3급 살인으로 기소되고, 정신 이상 진단을 받은 뒤, 2010년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둘 사이에 88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형 데이브와 함께 자랐지만 늘 그늘에 가려있었던 동생 마크(채닝 테이텀)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존 듀퐁이 억만장자이자 전통적 미국 지배계급의 일원이 아니었어도 이런 정도 처벌에 그쳤을까요. 미국 사회가 들끓었습니다. 영화는 이 가십덩어리 살인 사건을 소재로 선택했지만, 그 소재를 ‘다루기’보다 ‘바라보기’를 택합니다. 아주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마치 줄거리 따위 없이 의식의 흐름을 쫓으며 인칭마저 변조해 독자가 읽으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택했던 누보 로망 소설처럼.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늘 겨울인 것 같습니다. 분명 컬러 필름인데도 흑백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스티브 카렐이 연기하는 존 듀퐁은 늘 턱을 살짝 들고, 날이 선 큰 코 위에서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듯 거만한데도, 절묘하게 눈빛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억만장자입니다. 기괴하고 모호합니다. “넌 내 친구인 것 같군. 친구들은 날 ‘이글(Eagle)’이라고 부르지. 아니면 ‘골든 이글’. 둘 다 괜찮아. 아니면 존. 아니면 코치.” 정상은 아니죠?

시네마 클래식/ 올림픽 관련 영화 네 편: 폭스캐처(Foxcatcher·2014)

그에겐 실제 챔피언 승마 선수였던 억압적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는 부재합니다. 돈과 사회적 지위 덕에 시련은 없었지만, 이 부재와 억압은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포장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하는 기묘한 퍼스낼리티를 낳습니다. “코치는 아버지야. 코치는 멘토야. 코치는 선수의 인생에 큰 힘을 갖지.” 존 듀퐁은 레슬링 선수로서 형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마크를 “너는 위대한 선수가 될 거야”라고 북돋워 줍니다. 마크는 답하죠.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형 데이브는 존 듀퐁을 몰아세웁니다. “당신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돈으로 마크를 살 수는 없어!” 질시와 결핍을 돈과 허세로 가리며 살아온 존 듀퐁에게, 유일하게 밝고 경쾌하며 정상적인 마크는 자신이 절대 가닿을 수 없는, 존재 그 자체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코미디언 스티브 카렐은 이 영화에서 서늘하고 결핍 투성이인 억만장자 존 듀퐁 역할로 배우 인생의 새 전기를 맞았습니다. 이전까지 근육질 액션 스타나 로맨스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 같은, 마치 인형 바비의 남자 친구 인형 켄 같은 이미지였던 채닝 테이텀 역시 배우로 새로 발견됐고요.

베넷 밀러 감독은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으로 철저한 분석 야구로 각광받았던 미 메이저리그 애슬래틱스 단장 빌리 빈 이야기 ‘머니 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경기 장면보다 사람 사이의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오는 스포츠 영화네요. 밀러 감독의 작품 중에선 고인이 된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주연의 ‘카포티(Capote)’도 끝내줍니다.

◇ “이 모든 것의 끝에 평화는 없을거야.”

■뮌헨 (Munich·2005)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 에릭 바나, 대니얼 크레이그, 죠프리 러시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뒤흔든 ‘검은 9월단’ 사건은 평화와 화해의 축제라는 올림픽을 가장 끔찍한 유혈 참극의 무대로 만듭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5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극좌파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은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단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았고, 서독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이 9명까지 숨지면서 총 11명이 희생당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은 이 비극을 재연하며 시작됩니다. 곧 이어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원조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의 각료회의 장면을 비춥니다. 군복을 입은 누군가가 “전투기로 게릴라 시설을 폭격했고, 팔레스타인 사람 60여 명이 죽었다”고 말하지만, 모두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골다 메이어가 결론을 내리죠. “우린 문명국이오. 하지만 모든 문명에겐 그 자신의 가치를 타협해야 할 순간이 오지. 당분간 평화는 잊고 우리가 강하다는 걸 보여줘요. 내가 결정했고, 책임도 내가 집니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11명.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최정예 요원들은 이들을 한 명씩 찾아내 처절한 복수를 이어갑니다. 스릴러적 구성으로 또 다른 암살 과정을 비출 때의 서스펜스, 그 속에서 부딪치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격정…. 왜 스필버그가 명장(名匠)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시네마 클래식/ 올림픽 관련 영화 네 편: 뮌헨 (Munich·2005)

영화 속에서 한 유대인 어머니가 아들에게 왜 나라를 세워야 했는지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 그 땅을 취해야 했단다. 아무도 우리에게 주지 않았으니까. 어떤 대가를 치렀고, 또 치르더라라도, 마침내 우리는 지구 위에 있을 곳을 갖게 된 거야.” 모사드 요원이 “너희는 정말 너희 아버지들의 소유였던 그 먼지투성이 황무지와 돌멩이로 지은 헛간 같은 집을 되돌려받고 싶은 거냐. 그게 너희 애들을 위한 최선이냐”고 물을 때, 팔레스타인인은 말합니다. “당연하지. 100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결국 승리할거야. 우리는 아이를 많이 낳아. 그 애들도 애들을 낳겠지. 그래서 영원히 기다릴 수 있어. 필요하다면 지구 위 어떤 곳에서도 유대인들이 맘 놓고 살아갈 수 없게 할거야.”

피가 피를 부르는 이 복수의 수레바퀴는 정말 영원히 굴러갈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전설적 영화 저널리스트 로저 에버트는 ‘뮌헨’에 대해 “스필버그의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공격이라 일컬어졌고, ‘이스라엘의 친구가 아니다’고 비난받았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그는 모두의 편을 들었다”고 평했습니다.

◇ 영화와 올림픽이 이토록 우아했던 시대

■불의 전차 (Charriots of Fire·1981)

감독 : 휴 허드슨

주연 : 벤 크로스, 이안 찰슨

영화가 이렇게 우아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올림픽은 원래 이렇게 우아한 스포츠 축제였던 겁니다. 반젤리스의 동명 주제 음악 ‘불의 전차’와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뛰는 선수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개봉한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스포츠 영화가 줄 수 있는 순수한 감동 그 자체입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헤럴드 에이브러햄과 에릭 리델, 두 영국 선수의 실화. 두 사람에겐 꼭 달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헤럴드는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차별과 따돌림에 시달렸고, 달리기는 그가 실력 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습니다. 선교사인 에릭은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신의 선물이라고 믿으며, 올림픽 금메달로 신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합니다. “난 하나님이 날 만드신 데엔 목적이 있다고 믿어. 그 분은 날 빠르게 만드셨고, 달리기를 할 때면 난 그 분이 기뻐하시는 걸 느껴.”

시네마 클래식/ 올림픽 관련 영화 네 편: 불의 전차 (Charriots of Fire·1981)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배반하지 않으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땀과 눈물, 육체적 능력으로 월계관을 쓰기까지 달리고 또 달리는 운동 선수의 모습이라니. 당시 이 영화는 “올림픽 정신과 그 영광을 표현한 이 시대의 걸작” “인생 철학이 담긴 최고의 클래식” 같은 찬사를 받으며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세계 영화상을 파죽지세로 휩쓸었습니다.

올림픽은 시작됐습니다. 이제 시끌시끌했던 경기장 밖의 이야기들은 잊어도 좋겠습니다.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땀과 눈물의 드라마,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순수한 열락의 순간들을 지켜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