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한 드라마 / TV조선 주말 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2’

‘이것은 드라마인가, 100분 토론인가.’

지난 18일 방송된 TV조선 주말 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2’는 국내 드라마 역사의 한 장(章)에 기록될 듯싶다. 드라마 한 회 70분을 박주미·이태곤 두 남녀 주인공이 치고받는 대사만으로 꽉 채웠기 때문이다. 대본만 A4 용지로 131매.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다. 이날 12회 방송 시청률은 닐슨 코리아 기준 전국 12.5%로 공중파 포함 동시간대 드라마 1위. 다른 배우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 지루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시청률이 나온 셈이다.

결사곡2 12회차 말말말

◇임테일(임성한+디테일)이 빚어낸 현실 ‘막장’

“내 몸 갖고 내 마음대로 좀 했어.” 극 중 신유신(이태곤)의 대사다. 불륜에 대한 변명을 넘어 ‘막말 폭주’란 비난을 받은 대사였다. 아내 사피영(박주미)을 향해 무릎도 꿇어보고 눈물 호소도 해보지만, 먹히지 않는다 싶으니 적반하장 되레 화를 낸다. 신유신은 “공자도 일흔이 돼서 세상을 알았는데 난 이제 마흔”이라거나 “나는 덜 익은 김치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하고 부족”이라고 말한다. 부족함을 짚으며 사피영에게 사죄하는 듯하지만 그 어떤 대사든 결론은 하나였다. “남자는 그럴 수 있다.” 오히려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피영이 문제 있다는 듯 세뇌에 나서기까지 한다.

드라마 자체는 70분 분량이지만, 중간 광고 등의 시간까지 합치면 실시간 방송 분량은 거의 100분. 일부 시청자는 “드라마를 틀었는데 ’100분 토론'을 하고 있었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유례없는 시도에 네이버 실시간 토크를 비롯해 각종 드라마 게시판과 블로그, 맘카페 등에선 19일 현재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레전드, 기네스감” “배우들 연기력, 내시경으로 보는 듯 뛰어났다” 같은 극찬에서부터 “그래도 한 회 전체는 너무했다” 등 극과 극 반응. ‘오후 6시 이후 2명 모임’을 지킨 ‘방역 수칙 모범 드라마’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임성한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각종 게시판에선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은 결혼 안 해봤을 듯” “원래 부부 싸움이 도돌이표라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다” “내가 이혼할 때와 꼭 같아서 더 몰입했다”는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4주간의 이혼 숙려 기간을 생각할 때, 오랜 시간 벌어질 일을 한 회에 집약해 표현한 것이란 해석도 있었다.

◇열흘간 찍고 또 찍고… ‘레전드’ 찍은 배우

‘단 두 명만의 대사'는 임성한의 전작 ‘압구정 백야’(2015)에서 그 기미를 보였다. 주인공 백야가 친엄마를 향해 폭로를 이어가는 장면이다. 하지만 당시는 30분짜리 일일 드라마였다. 이번 ‘결사곡’ 시즌 1에선 박주미가 엄마 이효춘에게 과거를 떠올리며 10분간 몰아친다거나, 불륜에 빠진 전노민을 향해 딸 전혜원이 10분 정도 조곤조곤 따져 묻는 장면으로 예열했다. 전혜원의 독백 한 토막만 A4 용지로 6장 분량이었다.

이번 회차로 임성한의 ‘선구안’이 또 한번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다. 연기 경력 30년에 만난 ‘인생작’이라는 평가의 박주미는 물론, 화 돋우는 ‘기름 장어’(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는 뜻)라는 별명이 붙은 이태곤 역시 “물 만났다”는 평이다.

지난 6월 진행된 촬영에선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열흘에 걸쳐 나눠 찍었다. 대본을 모두 외워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맞춰보긴 했지만 하루 만에 끝낸 건 아니다. 찍고 또 찍어도 누구 하나 불평이 없었다고 한다. 제작사 지담 안형조 대표는 “부정·분노·회피 같은 이태곤의 감정 변화와 이에 대한 박주미의 절제된 대응 등 심리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사의 완성도를 높이고 현실성을 최대화하려 했다”면서 “이혼이 단 칼에 맺고 끊는 게 아니듯 드라마도 관계의 정리를 단계적으로 표현하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