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프랑스 식당처럼 음악에도 프랑스 전문이 있을까. 한국에서 영순위 후보를 꼽는다면 아마도 서울시향일 것이다. 전임 지휘자 정명훈이 프랑스 음악통인데다, 스타 단원들도 즐비하니 말이다. 하지만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버금가는 저력을 지닌 악단이라는 걸 입증했다.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주회가 그 무대였다.
19세기 작곡가 생상스와 20세기에 걸쳐 살았던 드뷔시, 21세기 현재의 작곡가 필립 에르상까지. 이날 음악회는 프랑스 음악의 130년 역사를 펼쳐보인 자리가 됐다. 프랑스 음악의 근대와 현대, 탈현대까지 한자리에서 보여준 셈이다. 지휘를 맡은 마티외 에르조그는 프랑스 명문 실내악단인 에벤 4중주단에서 비올라를 맡았던 창단 멤버로 국내에도 팬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아파시오나토 앙상블’이라는 연주 단체를 설립하고 비올라 대신 지휘봉을 즐겨 잡는다.
에르조그는 코리안 심포니의 악장, 수석들과 주먹 인사를 나누고 무대에 올라온 뒤, 두 팔을 감싸쥔 채 잠시 고개를 숙였다. 첫 곡인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 이보다 어울리는 동작도 사실은 없었다. 프랑스 현대음악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 받는 이 관현악곡은 플루트의 매혹적인 독주로 시작되니 말이다. 지휘자는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기보다는 그 독주를 조용히 듣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셈이다. 코리안 심포니의 드뷔시는 화려한 맛은 적었지만, 대신 차분하게 정돈된 멋이 있었다. 비유하면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화려한 코너링을 뽐내기보다는 서로의 연주에 귀기울이면서 미연에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 운행’을 택한 셈이다. 덕분에 조심스럽지만 편안한 승차감이 있었다.
두 번째 곡인 1948년생 프랑스 작곡가 필립 에르상의 플루트 협주곡 ‘드림타임(Dreamtime)’은 한국 초연이었다. 초연이라는 건 누구도 실연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다. 불어로 초연을 ‘창조’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플루트 연주자인 조성현 연세대 교수야말로 이날 초연의 적임자였다.
‘꿈의 시간’이라는 곡의 제목은 호주 원주민의 신화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묘사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환상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의 작품. 도입부터 곧바로 플루트 독주가 쉴 틈 없이 계속되는 난곡이지만, 조성현은 뭉친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메아리 치듯이 플루트와 오케스트라 목관 악기들이 서로 주고받는 중반부는 꿈의 대화처럼 매혹적이었다.
절대 왕정 시대에 유럽 최고의 음악 강국이었던 프랑스는 1789년 혁명 이후 혼란과 격동을 거치면서 잠시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음악계를 재건한 작곡가이자 교육자, 오르간 연주자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였다. 올해 생상스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서 후반부에 연주한 곡이 교향곡 3번 ‘오르간’이었다. 파리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던 작곡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리스트 역시 그를 두고 유럽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고 격찬한 적이 있다.
수사법으로 따지면 점층법, 달리기에 비유하면 눈부신 막판 스퍼트라고 할까. 초반부 절제와 균형 감각을 강조하던 지휘자는 후반으로 가면서 곡에 내재된 웅장함과 성스러움을 모두 드러냈다. 마지막 격정적인 지휘 동작으로 곡이 끝나자 객석의 환호도 더불어 커졌다.
팬데믹 시대에 해외 명문 악단의 내한 공연은 끊기다시피 했다. 음악계도 비수기를 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지만, 역설적으로 예상치 못했던 ‘선물’도 있었다. 국내 연주자와 악단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수입품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국산품 소비가 늘어난 셈이다. 코리안 심포니는 오페라와 발레부터 정기 연주회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음악회를 소화하는 악단 가운데 하나다. 가끔씩 연주회마다 편차가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날 연주회만큼은 그런 우려를 잠시 잊어도 좋았다. 위기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라는 말처럼 국내 악단들은 놓치기 힘든 도약의 기회를 맞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