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잖은 감상문에 매주 쏟아진 의견 중 가장 많은 것은 아무개나 머시기가 미스트롯 경연을 심사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미있으면 그만인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이 30%를 넘어가니 시청자들은 정의(正義)를 요구하고 있었다. 시중에서 실종되고 타락한 정의를 누가 노래 잘하나 하는 TV 프로그램에서나마 지켜주길 원하는 것이다. 미스트롯이란 프로그램은 그렇게 제작진의 손을 떠났다. 시청자 투표 비율을 최종 결선에서 대폭 늘린 것은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누가 1등을 하느냐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순위가 공정하게 매겨지는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된 것이다.
양지은이 최종 1등에 오른 것은 그럴 만하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애당초 경쟁에서 탈락했다가 어떤 출연자가 예견치 못한 사정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추가로 재합류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연자를 탈락시켰던 심사위원들의 안목은 무엇인가. 그들은 최후의 입상 결과를 보며 리모컨을 눌러 그녀를 떨어뜨렸던 자신들의 손을 허리 뒤춤으로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대중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무엇을 심사하고 평가하고 감정한다는 것은 허공에 매인 외줄을 타는 것이다. 흔들리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떨어지면 끝이다. 심사위원이 여러 명으로 구성되는 것은 공(功)이든 과(過)든 서로 나누겠다는 보험의 의미가 크다. 미스트롯 심사위원들이 쑥덕거리는 장면은 한결같이 한 사람이 칭찬하면 다른 사람이 거드는 식이었다. 단 한 번도 의견이 갈리거나 누가 잘했다는데 그건 아니라고 반박하지 않았다. 심사위원이란 자리는 그런 것이다. 세미나 발제자처럼 뭔가 혼자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가 거들거나 아예 입을 다무는 사람이 심사위원이다.
중국의 무명 화가가 그린 로스코와 폴록의 가짜 그림들을 소더비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미술계 큰 손들이 8000만 달러어치나 사들였다가 개망신 당했을 때 그들이 내놓은 변명이 무엇인가.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이것은 명백한 진품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평가하기에 진품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문가들은 휴지가 된 800억원 앞에서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감추고 조용히 눈을 깔았다. 그것이 이른바 예술을 심사한다는 전문가들의 기본적 생리다. 그러니 왜 아무개를 떨어뜨렸느냐 왜 누구한테 편파적이냐고 흥분할 수 있으나, 절대로 과몰입할 일이 아니다. 호(好)와 불호(不好)의 경계에서 과하게 열받은 사람은 타자를 배격하고 공격하다가 결국 독선과 아집에 빠져 고립된다.
미스트롯 마지막 회를 보면서 누구의 발성과 창법과 호흡이 어떻느냐를 관찰하고 설파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지은을 1등으로 뽑은 뒤 계단 높은 곳 왕좌에 올라가 앉게 했을 때, 그녀는 행복하거나 뿌듯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 달 간의 합숙과 연습으로 이미 가족처럼 가까워진 2등 이하의 동료들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들을 모아놓고 올림픽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최종 출전자로 결정된 사람은 결코 거만하지 않다. 내가 운이 좋았구나, 다들 나만큼 또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인데 하는 심정이다.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은 양지은의 표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회 방송하는 세 시간 동안 400만명이 응원 문자를 보냈다. 400만은 경이로운 숫자다. 우리가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용필 공연에서 본 인파가 기껏해야 4만명이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보낸 문자 투표를 생방송에 맞춰 집계하는 것이 제작진의 최대 업무였다고 한다. 작년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했던 가수들의 경연이 그만큼 공정의 지표가 됐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미스트롯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민간의 영역은 이처럼 공정의 압박 논리가 여전히 엄격하다. 오늘 한국의 공적 영역에서 과연 공정의 논리는 얼마나 유효한가. 백성들은 무엇 하나 흠 잡히지 않으려고 애면글면하는데, 궐에 앉은 것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요 사기 치는 설레발이다.
미스트롯에 출연한 모든 사람의 노래 실력이 사실은 비등하다. 어쩌면 이들 가운데 1등을 뽑는다는 발상 자체가 유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이들 참가자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요 가수들이라는 사실이다. 가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해서 맨날 뜀박질 하거나 뭘 우걱우걱 먹거나 잡담으로 일관하다가 광고 모델로 나와 통닭이나 피자를 파는 자들이 텔레비전에 한가득이다. 가수가 유일하게 하지 않는 게 노래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가수라고 불린다. 그런 시대에 오직 노래로 자웅을 겨뤄 온 미스트롯 출연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