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마저 사라지다니, 대한민국 재즈 뮤지션의 삶이 이렇게 험합니다. 오늘은 설명이 필요없는 노래로만, 세션을 믿고 하겠습니다. 먼저 ‘플라이 미 투 더 문’.”
지난 14일 밤 11시 서울 강남구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이하 블루문)’. 색소폰 거장 이정식의 무대 위로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한 남자가 올라왔다. 처음엔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관객들은 그가 한 구절 부르자 환호성을 질렀다. 대한민국 재즈계의 살아있는 전설, ‘자니 브라더스’ 멤버 김준(80)이었다.
김준은 예정된 공연자가 아니었지만 블루문이 이날 마지막 영업을 한다는 소식에 깜짝 방문한 것. 그가 마지막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부를 때는 모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재즈 가수 웅산(47·본명 김은영)도 깜짝 출연했다. 그는 블루문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첫 앨범 표지는 블루문에서 인연이 된 단골손님 진권수 ISM레오스코프 대표와 작업했다. 그는 “소식을 듣고 발걸음이 여기로 왔다”며 “대한민국 재즈는 블루문을 통해 성장했다. 모두 블루문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이 2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압구정 한복판에서 파란 불빛 간판을 내뿜으며 로데오의 부흥과 절정, 쇠락과 부활을 지켜본 곳. X·Y세대(1970년~1990년대 중반)의 ‘재즈 입문소’이자 ‘데이트의 성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 영업 날, 마지막 공연을 함께하려는 사람들, 기념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30대 때부터 단골이었다가 머리가 희끗해진 후 장성한 아들 손을 잡고 온 중년 남성. 20대에 데이트를 했다가, 지금은 부부가 돼 손을 잡고 온 커플.... 직장인 정지예(35)씨는 “2000년대 중반 대학 시절, 블루문에서 데이트라도 있는 날이면 집에 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나섰다”며 “이곳에서 처음 재즈 공연을 접했고, 사랑하게 됐다. 한동안 못 왔었는데, 문을 닫는다고 하니 내 20대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건 재즈 가수 이주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연 마지막 관객들의 모습을 자신의 폰에 담았다. 그는 “블루문을 통해 제 결혼 축하, 뮤지션들과의 우정, 지인들과의 행복한 추억 모두 쌓을 수 있었다”고 했다. 재즈 가수 김현미는 ‘블루문’의 상징인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오늘은 정말 쉬지 않고 노래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블루문은 IMF 외환 위기 당시 대기업 부장이었던 재즈 애호가 임재홍씨가 명예 퇴직금을 털어 만든 곳이다. 그 후 팻 메시니, 윈턴 마살리스 등이 내한 공연 후 뒤풀이로 들러 공연하고, 히딩크 감독과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 대사도 단골일 정도로 국내 재즈계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올 초부터 코로나 사태로 금·토 공연만 해왔고, 최근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된 것. 이 자리에는 7층짜리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임 대표는 “스물세 살 된 아들과 사별하는 느낌”이라며 “파란색 글자가 적힌 시그니처 무대는 떼어 보관했다가 언젠가 다시 문을 열 때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