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보다 더 짙은 그의 왼쪽 눈썹산이 살짝 솟을 때, 손으로 직접 맨 보타이와 어우러진 까만 숄칼라(Shawl Collar) 턱시도가 어깻짓을 할 때, 이미 심장은 그를 향해 마중 나가 있었다. 포마드로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스타일 밑으로 넓은 이마를 가로지르는 주름선이 깊어지는 순간, 입가를 씰룩이며 내뱉는 “본드, 내 이름은 본드”. 숀 코너리란 이름은 ‘섹시한 남성’의 동의어가 됐다. 정보를 캐내는 스파이이면서도 여심까지 훔쳐내는 희대의 바람둥이지만, 그 역할이 숀 코너리를 만나자 우아한 젠틀함을 입었다.
위엄 있으면서도 동시에 유혹적인 본드 특유의 남성상은 며칠 전 별세한 제1대 본드 숀 코너리가 만들어냈다. 그의 첫 번째 본드 영화 ‘007 살인번호’(1962)에서 선보인 재킷을 보면 군복에서 영감 받아 살짝 솟은 어깨선으로 근엄함을 더했고, 깔끔하게 접은 리넨 포켓 치프가 눈에 띄는 영국식 슈트의 볼륨 있는 가슴 재단은 허튼 실수조차 허용치 않는 ‘무결점 일처리’를 연상케 했다.
허리선을 잘록하게 줄여 몸매를 부각한 ‘모래시계형(hourglass)’ 디자인으로 50년간 이어질 슈트의 유행을 구현해 냈다. 1960년대 박시(boxy)한 재킷이 유행했던 것에 반해 역으로 굴곡을 강조하면서, 남성적이지만 절대 과하지 않은 ‘신사의 품격’을 소화해냈다. 재킷 라펠(깃)과 넥타이 폭이 좁아 자칫 경망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엉덩이를 충분히 덮는 재킷 길이 덕에 신뢰감을 줬다. 완벽하게 다린 셔츠 위로 턱시도를 입을 때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숄칼라를 내세우면서도 보타이는 반드시 손으로 단단하게 매어 모양을 냈다. 유연하되 풀어지지 않는 ‘칼 같은’ 세련됨이다.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비트는 것이 ‘창의성’이듯 , 클래식 스타일에 유쾌한 변주로 좀 더 젊고 매혹적으로 보인다. 숀 코너리의 큰 키(188㎝)에 힘입어 더욱 빛을 발하는 ‘007 골드핑거’(1964) 속 스리피스 슈트는 요사이 ‘복고풍’ 유행에 맞춰 다시 주목받는다.
숀 코너리 패션을 창조해낸 이는 런던을 대표하는 슈트 거리 ‘새빌 로(Savile Row)’의 디자이너 앤서니 싱클레어. 그가 만든 ‘모래시계형’ 재단은 그 동네 이름을 딴 ‘콘딧 커트(conduit cut·콘두잇 재단)’로 불린다. ‘영국 슈트의 정석’으로 불리는 영화 ‘킹스맨’ 이전에 이미 숀 코너리는 패션 교과서였다. 숀 코너리의 여유로운 표정 덕에 그는 요즘 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힘들이지 않고 멋 내는 것·effortless chic)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곳곳을 살펴보면 뭐 하나 ‘그냥’ 해낸 건 없다. 고전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의 미소를 스크린에서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