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프로파간다 영화 '상감령'의 포스터.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주최로 경희대에서 열린 ‘세계문학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과 그 문학적 결산’ 국제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나온 A교수가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중국 정부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닙니까?” 바로 앞서 발표했던 옌볜대 B교수는 중국의 ‘항미원조 문학’이 ‘미 제국주의자와 싸워 승리를 거둔 인민들의 업적’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항미원조 전쟁을 깊이 있게 발굴함으로써 영웅들의 업적을 노래하고 민족정신을 드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지나친 비약이며, 전쟁의 한 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던 A교수는 토론 시간이 끝나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서울 한복판 학술회의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앞으로 더 큰일이 일어날 겁니다…”

중국인들이 일상 용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항미원조’란 우리로서는 속이 뒤집어질 말이다. 그들이 ‘침략자 미국에 대항해 (북)조선을 도와준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은 다름아닌 6·25다.

정권 수립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은 소련 스탈린의 농간에 휘말려 자국 인민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 동원해 십수만 명을 희생시킨 이 전쟁을 ‘미 제국주의와 맞선 정의로운 전쟁’으로 선전·선동했다. 정치적으로 인민을 단합하려는 뻔한 목적이었다.

전쟁 중 그들의 대표적인 승전으로 미화된 것이 이른바 ‘상감령(上甘嶺) 전투’다. ‘십수억 중국 인민 애국심의 원천이 상감령’이라는 말도 있고, 지난해 미국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화웨이 회장이 “상감령 전투 때처럼 미국에 맞서겠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측 군사(軍史)에서 ‘저격능선 전투’(1952년 10월 14일~11월 25일)와 ‘삼각고지 전투’(10월 14일~11월 5일)라 부르는 두 전투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다. 한국군의 공식 입장은 두 전투 모두 ‘국군이 이겼다’는 것이다. 국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남쪽 능선의 A고지와 돌바위능선을 지켜냈고,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유리한 지형을 얻을 수 있었다. 북쪽 능선의 Y고지는 중공군이 점령한 채로 전투가 끝났으나, 손실 병력은 국군 4830명, 중공군 1만4867명으로 중공군이 국군의 세 배가 넘었다. 아무리 국군의 전과를 낮춰 보더라도, 결코 패전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긴, 베트남을 무력 침공했다가 패퇴한 1979년 중·월 전쟁에 대해서도 중국 측은 ‘적의 요지에 타격을 줘 승리한 뒤 신속하게 퇴각했다’고 둘러댄다.

상감령 전투는 당시부터 이미 중국에서 ‘대첩’으로 과대포장됐다. 대륙 곳곳에서 보낸 수많은 편지와 위문품이 중공군의 땅굴 요새로 쏟아졌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국과 인민의 승리를 봉헌하는 의지’라는 ‘상감령 정신’이 맹위를 떨쳤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항미원조·상감령 타령인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총 43일의 전투 중 미군은 처음 11일만 일부 참여했고 나머지 32일은 두 전선 모두 국군이 전투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이다. 분명 ‘국군과 중공군의 전투’였는데도 중국 측은 ‘미국과 싸워 이겼다’며 정신승리에 취한 것이다. 1956년 나온 중국의 고전적인 선전선동 영화 ‘상감령’을 보면, 아무리 봐도 위구르계 중국인처럼 생긴 ‘미군’들은 인해전술을 쓰며 고지로 올라오다가 땅굴요새에서 기관총을 쏘는 중공군에게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침략자’와 싸웠다고? 아니, 침략에 맞서 저항한 것은 우리 땅에서 싸운 국군이었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처럼 주변 국가의 역사적 상황이나 상흔에 둔감하고 무지한 경우가 많다. 2006년 하얼빈시에 세워진 안중근 동상이 ‘외국인 동상은 안된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철거될 때, 한 중국인이 “서울에 마오쩌둥(毛澤東) 동상을 세우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 그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그 두 경우가 어떻게 같은가. 하얼빈에서 보기에 안중근 의사는 자기들을 대신해서 제국주의와 싸워준 영웅이 아닌가? 반면 서울에서 보면 마오쩌둥은 1951년 1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서울을 무력 점령한 침략자가 아닌가.”

엑소의 레이,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등 중국 출신 아이돌 가수들이 중공군 참전 70주년과 때를 맞춰 소셜미디어에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영웅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등의 글을 올려 물의를 빚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 운운한 것과 보조를 맞춘 듯한 발언이다. 그때 그들의 정부가 스탈린·김일성과 손을 잡고 그 ‘영웅’들을 한반도로 보내 무력으로 지구상에서 말살시키려고 했던 나라는, 지금 그들이 연예활동을 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 바로 그 나라가 아닌가? 만약 마오쩌둥의 ‘항미원조’가 계획대로 이뤄져 한반도 전체가 오성홍기로 붉게 물들었다면, 한국 정부는 당시 미국의 비밀 작전대로 남한 면적의 0.1% 정도인 남태평양의 사이판이나 티니언 섬으로 망명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K팝이나 한류 같은 건 생겨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국 영화 '상감령'(1956)에서 중공군 역을 맡은 여배우가 영화 주제가 '나의 조국(我的祖國)'을 부르는 장면.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발동시키는 역할을 해온 이 노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리허설에도 등장했다.
에프엑스의 빅토리아(왼쪽)와 엑소의 레이. 한국에서 연예활동을 하는 중국인인 이들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등의 글을 올려 물의를 빚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