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만 사진작가가 찍은 소리꾼 장사익 사진. /사진작가 김녕만

“저희는 2004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에서 처음 만났어요. 전 사진작가로, 이 친구는 초대 가수로. 그냥 마주쳤는데 통한다는 느낌이었죠. 촌놈 감성이랄까. 이야기해보니 나이도 1949년생으로 같고, 하는 일을 늦깎이로 시작한 것도 비슷하더라고요. 전 전북 고창, 이 친구는 충남 광천에서 자라 서해의 노을을 보고 자란 정서도 비슷하고요.”

사진작가 김녕만(71)은 소리꾼 장사익(71)을 처음 만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16년 동안 일주일에 여섯 번 보는 친구. 아내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놀리는 두 사람이다. 이렇게 만날 때마다 김녕만이 찍은 장사익 사진이 25여만장. 그중 230장을 추려 ‘장사익, 당신은 찔레꽃’이란 사진집을 최근 냈다. 그리고 그중 40장을 추려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한다.

두 사람이 처음 작업한 건 2009년 장사익의 미국 뉴욕 공연에서 선보인 ‘황혼길’ 뮤직비디오다.

“전 일찍이 죽음을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정미소에서 팔을 크게 다쳤거든요. 세 동강이 났었죠. 깁스한 채 종일 누워서 하는 생각은 ‘어떻게 죽을까’였어요. 그래서 장사익의 ‘황혼길’ 노래가 마음에 와 박혔죠.”

“으스스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메/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엇비슷이 비끼어 누워/나도 인제나 잠이나 들까.”(황혼길 中)

지난 5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사익 소리꾼과 김녕만 사진작가. 7일부터 이곳에서 사진집 '장사익, 당신은 찔레꽃' 출간 기념 전시를 연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 노래에 고향에서 찍은 장례식 사진을 엮어 영상으로 만들었다. 색색의 깃발이 흔들리고, 상여 위로 흰 천이 흩날리는 장면이었다.

“김녕만 영상을 본 미국인들이 ‘멋지다’고 난리였어요. 나비의 춤 같은 환상적인 장면들과 장송곡이 어우러지니. 이 영상을 보고 생각했지요. 우리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게, 한국적인 정서를 공유한다는 게 고맙다고.”

둘 다 인위적인 걸 싫어한다는 점도 같다. 김녕만이 찍은 장사익 사진은 조명이나 플래시를 켜지 않고 자연 빛만으로 찍은 것이다. 장사익도 공연이나 방송할 때 화장을 하지 않는다.

“김녕만이 찍은 사진 중 제일 좋아하는 게 2010년과 2018년 한복 입고 찍은 독사진이에요. 8년 동안 얼굴에 주름도 많아지고 머리는 더 하얗게 셌는데, 전 2018년 사진이 더 좋더라고요. 그 사진을 보고 생각했지요. 늙는 게 손해는 아니구나. 늙은 내 모습이 더 멋지구나.”

“장사익이 포토제닉한 건 흰머리 때문이에요(웃음). 무대가 검다 보니, 머리까지 검으면 얼굴만 동동 뜨거든요. 주름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주름 지워달라고 난리인데, 이 친구는 주름 잘 찍어달라고 부탁해요. 나이테 같아 보여 멋지다나.”

소리꾼 장사익(왼쪽)과 사진작가 김녕만이 서로 닮은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두 사람은 모두 늦깎이로 꿈을 이뤘다.

“전 원래 꿈이 없었어요. 깁스를 하고 누워 죽음을 생각하던 시절 우연히 본 신문 속 사진 태백 정암사 탑. 이걸 보고 사진기자라는 꿈이 생겼죠. 그때부터 6년간 치료받고 학원 다녀 늦게 대학을 들어갔고, 특채로 신문사에 입사했어요.”

장사익도 열다섯 개 직업을 전전하다 마흔다섯에 가수로 데뷔했다.

“우리 최소한 구순까지는 살 거 아니에요. 마흔다섯이면 딱 절반이에요. 그러니 너무 급하게 뛰어가지 말고 천천히 최소 3년, 길게 10년 죽을 힘 다해 원하는 걸 하다 보면 꿈은 반드시 이뤄져요. 제 마지막 꿈요? 할아버지가 돼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거동이 힘들어 지팡이를 짚어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것.”

“제 소원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 거요. 제가 농담으로 그래요. 나보다 먼저 죽으라고. 관에 못 박는 모습도 찍고 싶다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