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언론인협회(IPI)는 20일(현지 시각) 지난 12월 정부·여당 주도로 제정된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언론의 기능을 제한할 수 있다”며 “법 시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IPI는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문을 통해 “한국의 ‘새 가짜 뉴스 방지법(anti fake news bill)’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시민사회와 언론 이해 관계자들의 인권 영향 평가를 위해 오는 7월로 예정된 법 시행을 일시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IPI는 특히 “이 법률은 ‘허위 및 조작된 정보’와 ‘공공의 피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게 정의되어 있어, 정부 관리와 기업들이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쉽게 만들고 언론 매체들이 자기 검열에 나서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PI는 전 세계 100개 국가의 언론인과 미디어 경영인, 편집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1950년 결성 이래 언론 자유 수호 활동에 있어 국제사회에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정부가 손배 적용 대상 결정… 언론 자기 검열 우려"
IPI가 이날 시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anti fake news bill·개정 정보통신망법)’의 핵심은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이나 ‘부당 이득을 취할 의도’로 ‘허위 조작 정보’나 ‘불법 정보’를 게시·유포하거나 공익을 침해한 언론사나 유튜버 등에 최대 5배의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미 입법 단계에서부터 야당뿐 아니라 범여권 일각, 여러 시민사회 단체에서 “허위·조작 정보의 기준이 모호하고, 소송 남발로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IPI도 이날 성명을 통해 “집권 진보 정당이 주도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서명한 이 개정안의 입법 과정을 많은 비평가가 ‘졸속’(rushed)으로 평가했다”며 “무엇이 ‘허위·조작 정보’이고, ‘공공의 해악’인지 법에 모호하게 정의돼 있어 정부 관료나 기업 관계자가 언론을 상대로 고소하기 쉬워지고, 매체들이 자기 검열에 나설 거란 우려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선 미국 국무부도 “개정된 법률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며 비판했고, 유네스코(UNESCO)는 “검열을 조장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IPI는 또 “이 법은 집권당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에 법률 해석과 적용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개정 법률에 따르면,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이 되는 언론과 유튜브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주무 부처는 새롭게 출범한 방미통위가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야당과 시민 단체 등에선 “사실상 정부 입맛대로 언론사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IPI는 특히 “이 법안에 대한 많은 비판이 통상 진보 여당과 궤를 같이해 온 친정부 및 시민 단체들로부터 나왔고, 이미 한국 법 체계상 허위 보도와 혐오 표현 피해자 구제 방안이 있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징벌적이며 불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IPI는 이날 성명에서 “국회의원들이 법안의 광범위한 문구가 한국 헌법상의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는 ‘위헌’이라고 주장해 왔다”고 전하면서 “정작 진보 성향 국회의원과 시민사회가 옹호했던 언론 자유에 대한 더 큰 보호를 명문화하는 여러 조항은 최종 법안에서 빠졌다”고도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부작용 방지책으로 들었던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에 대한 친고죄 적용’을 최종 법안에선 전부 빼 버렸다. 이에 언론계와 시민 사회에선 “언론 보도에 가해질 ‘형사 처벌 리스크’가 여전한데 징벌 배상까지 과도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날 스콧 그리핀 IPI 사무총장은 “IPI는 이 입법이 한국 기자와 언론사를 검열하고 처벌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지 깊이 우려 중”이라며 “한국 정부가 즉각 법 시행을 중단하고, 언론계 및 시민사회와 협의해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등 인권에 미칠 위험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한 뒤 입법 내용을 수정하거나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