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올리브영 매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화장품을 체험하고 있다. 피부 타입과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고 맞춤형 제품을 추천해주는 K-뷰티 체험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박성원 기자

“눈 밑은 밝게 해 다크서클 드러나지 않게 탱탱한 느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전해 주실 수 있나요?”

지난 연말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 청담동의 한 뷰티숍. 두바이에서 온 직장인 메이사 사에드씨가 말하자,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도우미가 통역은 물론 머리핀 꽂는 방식까지 알려주며 매니저처럼 돕고 있었다. 이른바 ‘K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 장면. 사에드씨는 한국 방문 전 소셜미디어를 뒤져 해외 출신 한국기업인과 SM엔터테인먼트 출신이 만든 ‘포시푸시’에서 제공하는 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는 “블랙핑크 지수를 좋아해 그대로 꾸며달라고 했는데 정말 연예인처럼 정성스럽게 꾸며줘 대만족”이라고 했다.

‘K팝 아이돌 스타일링’으로 블랙핑크 지수처럼 변신한 외국인 관광객. /포시푸시

◇K컬처와 만난 ‘디깅’ 문화

최근 세계 젊은 세대의 소비 습관을 바꿔놓고 있는 이른바 ‘디깅(Digging·파고들기) 문화’가 ‘K컬처’와 만나 외국인들의 한국 관광이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디깅 문화’는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들고, 직접 찾아서 즐기며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와서 좋아하는 아이돌이 시켜 먹은 양념치킨을 사 먹고, ‘케데헌’ 루미와 진우가 만난 낙산공원 성곽길 같은 장소를 직접 걸어보는 것.

한국 가수들이 녹음했던 스튜디오를 찾아가 노래를 배우고 녹음을 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삼성동의 한 음향 스튜디오에선 미국인 여성 엘리아스씨가 음향 감독 지시에 따라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주제가 ‘골든’을 부르고 있었다. “업!업~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고음 대목이었다. 그는 “한 두시간 코스에 녹음도 하고 보컬 코치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왔다”며 “원래 노래 잘 못하는데 큰 자신감을 얻고 돌아간다”며 웃었다. 특히 ‘케데헌’ 이후 이런 서비스가 부쩍 많아졌다. 여행 예약 플랫폼 ‘클룩’ 관계자는 “‘케데헌’ 흥행 이후 한국 문화 체험 예약이 급증, ‘K팝 아이돌 스타일링 체험’ 예약 건수가 두 달 만에 200%, K팝 댄스를 배우는 클래스가 40% 늘었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PC방도 관광 명소가 되다

K 디깅은 단순히 ‘BTS의 나라에 왔다’가 아니라 ‘BTS처럼 꾸미고, 먹고, 사진 촬영하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한국관광공사가 2024~2025년 상반기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K푸드·K뷰티 등 주요 업종에서 외국인 소비 패턴이 내국인 소비 패턴과 90% 가까이 유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방한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트렌드도 많이 안다는 것. 이 기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연극·공연 관람을 찾은 외국인들은 전년 대비 237.6% 늘었고, 서울 성수동의 액세서리 판매액은 1826.6% 상승했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 젊은이들처럼 홍대 앞, 성수동의 다양한 볼거리와 맛집, 뷰티숍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최근엔 e스포츠 우상 페이커(본명 이상혁) 덕에 PC방이 주목받고 있다. 페이커가 소속된 팀 ‘T1’의 이름을 딴 PC방인 서울 마포 ‘T1베이스 캠프’는 글로벌 팬들의 인증샷 명소로 꼽힌다. 페이커의 인기와 결합해 최근 한국 PC방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까지 바뀌었다. 빅데이터 조사 기관 썸트렌드 발표에 따르면, PC방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은 2021년 ‘부정적 34.6%·긍정적 39.4%’에서 지난해 ‘긍정적 59.4%·부정적 17.9%’로 긍정적인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K팝 기획사들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지난달 서울 대치동의 K팝 학원 SM유니버스. 이곳 강의실에서 중국인 초등학생 4명이 서툰 한국어로 걸그룹 ‘하츠투하츠’의 노래 ‘스타일’을 부르고 있었다. 한국인 강사가 “입 좀 더 벌리자”고 하자 통역 직원이 즉시 중국어로 전했다. 학생들은 이어서 “제 이름은~”으로 시작하는, K팝 오디션용 한국어 자기소개 수업에 참석했다.

이곳은 원래 SM엔터테인먼트와 종로학원이 만든 아이돌 지망생 교육 기관. 하지만 최근 K팝 체험 관광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5~20명씩 단체로 듣는 ‘K팝 캠프’, 당일치기인 ‘원데이 클래스’ 등이 있다. 닷새에 100만원 정도인 K팝 캠프는 지난해 154명이 이용했고, 원데이 클래스 수강생은 지난해 826명으로 1년 새 5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7월에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번화한 오차드 거리에 분원까지 냈다. 장재원 SM유니버스 대표는 “싱가포르 기업이 전액 투자하고, 학원은 수강 노하우만 전수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한국의 ‘K팝 연습생’ 문화 자체가 관광과 결합된 문화 상품이 된 것이다.

☞K디깅(digging)

디깅(digging)은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몰입과 만족을 얻는 팬덤 활동이다. ‘K디깅’이란 K컬처를 파고들어 직접 체험하고 만족을 얻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