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새 주말극을 선보인다. 통속적인 소재를 가공해 감동과 시청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온 세속적 가족 드라마의 여왕, 문영남 작가의 주말극 ‘빨간 풍선’이 17일 밤 9시 10분 TV조선에서 첫선을 보인다. 최고 시청률 48.3%와 44.3%를 각각 기록한 ‘왕가네 식구들’(2013)과 ‘수상한 삼형제’(2009)에 이어, ‘오케이광자매’(2021) 등을 통해 가족 드라마의 표준을 제시했던 문 작가와 진형욱 감독이 TV조선에서 다시 만났다.
◇가족 사실주의 드라마의 탄생
‘고부갈등’ ‘삼포세대’ ‘처월드(처가집)’ 등 가족 내 갈등을 둘러싼 문제를 실감나게 묘사하며 패밀리 리얼리즘(가족 사실주의)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두 콤비가 이번엔 인간 내면의 욕망을 건드리는 시리즈를 선보인다. 사전 공개된 영상에서 주인공 조은강 역의 배우 서지혜가 “풍선은 가슴 속에 몰래 부풀려둔 비밀스러운 욕망일지도 몰라”라고 고백하는 대사는 주인공들이 보여줄 관계의 파국을 예고한다. 피부과 의사 고차원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상우의 “바람 빠져 내 손에 잡힌 풍선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라는 대사는 비틀어진 욕망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겉으로 시원하게 드러내며 말할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이야기로 공감의 장을 만들 것”이라면서 “남들과 비교하며 시달리고 배 아픈 욕망을 달래려 몸부림치는 인간 군상의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전했다.
◇대본 속 지문까지 챙기는 문영남표 디테일
갈등의 축은 모든 것을 가진 여자 홍수현(한바다 역)과 그와 오랜 친구이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녀’처럼 살아온 서지혜(조은강)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4년간 뒷바라지한 남자친구의 배신까지 겪은 서지혜의 마음속엔 어느덧 빨간 풍선이 부풀며 그녀를 바꾸어 놓는다. 또 다른 갈등의 싹을 키워가는 지남철역 이성재는 데릴사위로 ‘처월드’에 입성한 인물. 장인에게 매번 불려가며 짓눌렸던 그가 자신의 남성성을 되찾으려 하면서 뒤틀린 관계를 만들어낸다.
세 배우 모두 문영남 작가와는 첫 만남. 문 작가는 대본 리딩에 매번 참여하며 행간은 물론 지문 속 세세함까지 챙겼다. 배우들은 이전과 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느라 대본 리딩에서부터 실전처럼 몰입했다. 이성재는 “힘들어도 티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지남철의 캐릭터를 말투나 표정을 통해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름만 봐도 성격을 알 수 있는 문영남 특유의 작명(作名)법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바다의 시어머니 나공주 윤미라를 비롯해, 지독한 짠돌이에 깐깐한 한바다의 시아버지 고물상 역 윤주상의 능청스러운 열연은 드라마의 맛을 더한다. 조은강의 어머니 양반숙 역 이보희와 조은강 아버지 조대봉 역 정보석의 아웅다웅하는 ‘부부 케미’와 지남철의 아내 고금아 역 김혜선은 세상 물정 모르는 주부로 변신해 웃음을 자아낸다.
◇문영남표 유행어 다시 탄생하나
문영남 작가는 현실적인 단어를 대사로 엮어 유행어를 만들어낸다.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당시 안계심 역할을 맡은 나문희의 대사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야 에효효효”가 유치원생 아이들까지 따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데 이어, 박살라 역의 이보희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빠마는 풀어봐야 알고 신발은 벗어봐야 안다”는 대사도 많은 공감을 받았다.
‘오케이광자매’(2021)에서 이철수 역을 맡았던 윤주상이 내뱉는 “이건 아니라고 봐, 아닌 건 아닌 겨” 역시 각종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사용됐다. 그만큼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 적확하게 포착해 쉬운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최근 들어 판타지 드라마의 홍수 속에 주말 드라마마저 개연성이 떨어지며 극한 감정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문영남표 드라마는 자극적 소재라도 시청자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과장과 생략을 풀어내며, 생활 속의 본질적 감정을 잡아낸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 차별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