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인지도 불분명한 대형 창고에 컨테이너들이 즐비하고, 한 가운데 덩그러니 링이 놓여있다. 14명 남성 참가자들은 체급·나이를 불문하고 6박 7일 격투를 벌여 최종 생존자 4명이 상금 1억원을 갖는다. 게임 예능 ‘파이트클럽’(카카오TV·8일 종영)의 무대. 삶의 원칙은 단 하나 ‘싸워서 이기는 것’뿐이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끊임없이 대결 상대로 지목되다 탈락하는 비정한 세계. 초반부 탈락자들의 쓸쓸한 모습에 채널을 돌린 시청자도 많다.

‘피의 게임’의 한 참가자가 짐을 들고 생존 게임 현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웨이브

요즘 TV는 온통 ‘서바이벌(살아남기)’ 판이다. 굳이 ‘오징어게임’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예능·드라마·다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생존’을 화두로 한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오는 13일 처음 방송되는 KBS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는 ‘못 웃기면 죽는다’를 모토로 걸었다. 총 70여 명 코미디언이 최대 5명씩 팀을 이뤄 방청객 투표에서 못 웃긴 팀이 탈락하는 구조. 박준형⋅김민경⋅오나미⋅김준호 등 베테랑 개그맨의 대결이 펼쳐진다. 지난 1일부터 방송된 MBC ‘피의 게임’은 최종 생존자 한 명이 상금(최대 3억원)을 차지하는 게임 예능. 경찰·아나운서·크리에이터·대학생 출신 참가자들은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어떤 속임수를 써도 괜찮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TV 속 만들어진 세계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더 강한 자극을 찾으면서 서바이벌형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사랑한 예능 1·2위(한국기업평판연구소 10월 조사) ‘내일은 국민가수’(TV조선)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Mnet)도 노래와 춤을 앞세웠지만, 처절한 생존 경쟁이라는 점에서 똑같다.

예능뿐만이 아니다. tvN 신작 드라마 ‘해피니스’는 좀비 감염병이 퍼진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생존기이고, 지난 9일 처음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생존’(6부작)도 안전사고⋅환경⋅경쟁사회 등 현대 생활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을 훑는다. 제작진은 “현대인들은 코로나 이후 ‘생존’이라는 본원적 가치에 직면했다”며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생존 키트’를 드리기 위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코로나 이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생존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