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前) KBS 사장이 9일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됐다. 방통심의위는 이날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정 전 사장을 위원장으로 호선했다고 밝혔다. 부위원장에는 이광복 전 연합뉴스 논설주간, 상임위원에는 황성욱 변호사가 임명됐다.
정 신임 위원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거짓과 편파·왜곡을 일삼는 행위에 대해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다”고 언급해 논란이 예상된다. 국내 방송·통신 콘텐츠에 대한 유일 심의 기구인 방심위의 수장(首長)으로 임명된 인물이 취임 일성으로 사실상 언론에 대해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미국만 해도 수정헌법 1조의 정신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명색이 언론인 출신으로 규제 기관의 장이 된 사람이 취임 일성으로 언론에 대한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위원장 인선 자체가 최근 정부 여당이 ‘가짜 뉴스’를 명분으로 추진하는 언론중재법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방심위 회의에서도 일부 위원이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KBS 사장을 지낸 정 위원장이 과연 방심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위원장이 사장을 맡았던 시절 KBS에선 북한 군가인 ‘적기가(赤旗歌)’가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방송을 내보냈고, 친북(親北) 인사 송두율과 베네수엘라를 망친 독재자 차베스 등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논란이 됐다. 정 위원장은 한겨레 논설위원 시절인 2002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면제 논란을 집중 공격했는데, 정작 자신의 두 아들이 미국 국적자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이후에 드러나 큰 논란이 일었다. 정 위원장이 이끌게 될 방심위에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등 특정 친여(親與) 단체 출신들이 여권 추천 위원 중 다수를 차지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정 위원장은 “(나는) 정당에 가입한 적 없다” “(방심위는) 합의체 기구니 그에 따라 하겠다” “믿어달라”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취임사에서도 “비판에 대해 늘 마음의 문을 열고 경청해 왔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의 기회로 삼아 왔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책무를 다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