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볼 때마다 연일 이어지는 법정 공방에 아찔합니다. 정치인 중 재판받고 있는 피고인은 왜 이리도 많으며, 그들의 재판은 왜 담당 판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은지, 세상에 과연 정의란 존재하는 건지 회의가 듭니다.
법률신문 편집인을 맡고 있는 차병직 변호사의 산문집 ‘경계에 서는 법’(김영사)을 펼쳤더니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의 각론 중 하나가 정치의 범죄화와 범죄의 정치화인 셈이다. 모든 정치 행위가 애초에 범죄 행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정치 행위가 범죄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주권자들이 관전하는 가운데 범죄의 낙인을 서로 상대의 이마에 먼저 찍기 위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정치 행위라고 착각할 지경이다.”
차 변호사는 재판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AI 아닌 인간이 재판을 하는 이상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건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법적 안정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예외적이거나 제한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만큼의 정도를 벗어난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건 필연적 결과겠죠. “그리하여 재판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어느새 운동 경기의 성격을 띠고 만다. 결론은 정해져 있지 않다. 판단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결국 그 누구를 찾아내는 것이 재판에서 이기는 길이다. 그 누구를 미리 확인할 수 없다면, 누구든지 설득하면 된다.(…)패소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결함의 확인이 아니라 불운의 일격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면 승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법정은 이미 ‘판결’이 아닌 ‘판정’의 코트(court)일지도요. 곽아람 Books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