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에드워드 피시먼 지음|이성민 옮김|RHK|884쪽|4만3000원
초크포인트(Choke Point·조임목). 이 책의 원제인 이 단어는 이란 호르무즈 해협처럼 좁고 중요한 길목 등 지정학적 요충지를 말한다. 에너지 등 전략 자원의 흐름을 지배하기 위해 ‘목을 조르듯’ 통제하는 핵심 병목 지점이다. 총으로 상대를 얼마나 무력화시키는지가 중요한 재래식 전쟁 이후 현대의 ‘경제 전쟁’에선 초크포인트도 전술의 핵심 지점이다. 미국 국무부·재무부 등에서 이란과 러시아 제재를 담당했던 저자 에드워드 피시먼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본격적인 경제 전쟁 시작점으로 ’2006년 이란 핵 프로그램’을 꼽는다.
미국은 올해도 이란 핵 프로그램을 명분으로 공격을 감행했지만 사실 이는 자승자박이기도 했다. 이란 핵 역량의 시발점은 미국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57년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프로그램에 따라 이란과 민간 핵 협력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미국이 소련의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국가들과 과학 기술을 공유한다는 냉전 시기의 구상이었다. 이란이 오늘날에도 사용 중인 5메가와트급 연구용 원자로를 공급했다. 수십 명의 젊은 이란 과학자를 MIT 등 미국 최고 대학으로 데려와 핵공학 교육을 받게 했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이란 핵 프로그램의 기반을 구축했다. 미국은 당시 이란의 굳건한 친미주의 정권을 믿고 있었다.
이후 2006년 이란은 핵 능력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 이란 영토 내에 확인된 핵 원심분리기만 수천 개였다. 어떻게 활용될지 상상할수록 끔찍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두고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했다. 이슬람 혁명수비대와 헤즈볼라 같은 이란 정부의 무장 대리인들은 매일같이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는 이란의 석유 매장량은 3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2위다. 미국이 노린 초크 포인트는 석유 수출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나라들의 이란 석유 구입을 강제로 막기는 어려웠다. 미국은 ‘이란의 우회 계좌’를 차단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이란의 목줄을 죄어갔다. 2011년 중국 자금이 이란으로 유입되자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익이 해외 계좌에 쌓이도록 금융 제재를 가했다. 이를 기점으로 이란 경제가 무너졌고 2015년 ‘이란 핵 협정(JCPOA)’을 체결했다. 저자는 이후 트럼프가 협정을 파기하기 전까지는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트럼프 2기 출범 전까지 약 20년간 미국은 주로 칼 대신 펜으로 싸웠다. 미국이 “펜 하나로 공표한 간단한 규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8000㎞ 거리의 보스포루스 해협에 현재 호르무즈 해협같이 유조선을 빽빽하게 줄세우기도 했다. 앞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도 ‘달러 조달력’ 등 초크 포인트를 노리며 각종 제재를 가했다. 지금보다 강했던 달러 패권을 중심으로 자유무역 질서의 상호 의존을 무기로 활용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제재는 항생제와 같다. 남용하면 약해지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국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을 때 강하게 작동한다. 제재가 길어질수록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미국에게서 분리·자립하게 된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 것 또한 제재의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트럼프 2기가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하는 경제 전쟁은 무엇이 다를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트럼프가 전임자와 다른 세 가지 측면을 말한다. 첫째, 트럼프는 미국의 강점 ‘금융·기술’ 분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취약한 영역인 ‘무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관세를 썼다. 둘째, 트럼프는 경제 무기를 동맹국에도 겨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경제 전쟁의 목표를 재정립했다. 과거 미국은 경제 무기를 상대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일시적 수단으로 봤다. 현재는 세계 경제를 영구적으로 재편하려는 수단으로 여긴다. 일례로 화웨이에 대한 광범위한 수출 통제는 기업 관행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통신망 구축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점에서다.
저자는 한때 정부의 ‘내부자’였다. 당시의 시선으로 소설처럼 묘사하는 부분이 많다. 현재 미국의 대외 전략을 크게 경제·군사 전쟁 투트랙으로 본다면 경제 전쟁 분야를 설명하는 벽돌책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직후인 2025년 2월에 미국에서 출간됐다. 저자의 ‘암울한 시나리오’ 예측은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을 경제 분야로 옮길 능력이 없어진다면, 다시 한번 실제 전장에서 싸우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