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미도리 노트와 펜 트레이. 그 속에 파이롯트 만년필과 펜텔 사인펜…. 스스로를 ‘문구인’이라고 부르는 김규림(35)은 고르고 골라서 문구를 쓴다. 지금까지 구입한 문구로 중고 외제차 한 대는 샀을 거라는 그가 수집한 물건과 단상을 모아 에세이 ‘소비 예찬’(위즈덤하우스)을 썼다.
‘소비 예찬’은 사실 그의 소셜미디어 닉네임일 뿐, 마구 돈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물건 덕후 김규림은 넓게 말하면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에 가깝다. 샀을 때 가장 행복했던 ‘하빈요 참외 주자’가 대표적.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청자 전시에서 참외 모양 주전자를 만나고 숨이 멎을 듯한 감정을 느낀다.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우연히 차 수업에서 이 주전자를 만난다. 수업 교수가 경기 여주의 도자기 제작자와 함께 오랜 연구 끝에 복원해낸 이야기를 들었다. 여주로 달려가 ‘업어온’ 이 주전자는 매일 저자의 방에 차 향기를 채워준다. “물건의 이야기에 굉장히 설득을 잘 당하는 편이에요. 기획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의 ‘본캐’는 마케터·기획자다. 배달의 민족에서 10년간 마케터로 일했고 현재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믹스커피를 재해석한 ‘뉴믹스커피’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과거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던 배민 문방구 ‘내땅 돗자리’도 그의 작품이다. 제품을 만들 때의 영감도 수집한 물건에서 받는다. “어릴 적 미국의 ‘프레드 앤 프렌즈’ 얼음틀이 너무 재밌었어요. 요술봉 모양의 얼음이 나왔어요. 얼음은 네모라는 편견을 부수는 물건이었죠.” 수줍음 많던 어릴적 그의 관심은 이런 물건들이었다. 예쁘장한 티셔츠 대신 웃긴 말이 써있는 티셔츠, 새롭게 나온 포켓몬 띠부띠부 씰. 친구들이 캐릭터 연필을 쓸 때 성인용 제도 샤프를 썼다.
스스로를 맥시멀리스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많은 물건의 위치를 5초 안에 다 파악하는 데다, 실제로 물건을 사용하기 때문. “정말 나다운 물건은 뭘까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나의 물건들이 나를 만들었거든요. 소유가 사유로 넘어갈 때의 기쁨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