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 관하여

프랭크 카프리오 지음|이혜진 옮김|포레스트북스|312쪽|2만원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처를 베풀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판사’로 불린 미국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1936~2025)가 쓴 이 책은 ‘법의 눈물’을 그리워하게 한다. IMF 때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려 음식과 과자를 훔친 엄마들에 대해 기소유예 제도를 활용한 검찰, 사무실 냉장고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를 꺼내 먹은 노동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 등은 지난 12일 법왜곡죄가 시행되면서 찾아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적용해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시 지방법원에서 1985년부터 38년간 근무한 카프리오 판사는 “내 법복 아래에는 판사의 배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주로 교통·주차 위반 및 시 조례 위반, 그리고 기타 경범죄 사건을 심리했다. 그의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대개 영어가 서툰 이민자,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근로 빈곤층 등이었다. 주차 위반 범칙금 몇백 달러를 내고 나면 아이들에게 먹일 식료품을 살 돈이 없었다. 카프리오는 이들의 범칙금을 기각하거나, 범칙금을 할부로 내게 해 주거나, 특별 기금으로 범칙금을 대신 내 주곤 했다.

카프리오는 암 투병 중인 아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던 아흔여섯 살 아버지가 급한 마음에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제한 속도를 위반해 기소됐을 때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가족을 돌보고 계시군요. 훌륭합니다”라며 기각했다. 동생에게 아들이 살해당해 고통받고 있는 여성의 주차 위반 범칙금도 기각했다. “이미 너무 끔찍한 일을 겪은 그녀의 부담을 가중할 수는 없었다.”

2017년 10월 30일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 그는 “가끔은 처벌보다 (피고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온기와 유머가 넘치는 그의 법정을 촬영한 영상은 ‘프로비던스에서 붙잡히다(Caught in Providence)’라는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며 사랑받았다. 이후 동명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며 구독자 294만명을 확보했다.

그는 2017년 1월 주차 위반으로 기소된 여성의 여섯 살 난 딸을 판사석으로 불러내 “이제부터 네가 판사야. 공정하고 정직해야 해. 벌금으로 얼마를 내라고 해야 할까? 300달러, 100달러, 50달러, 0달러 중 선택해”라고 말했다. 아이가 50달러를 부르자 “아침은 먹었니? 엄마한테 벌금 50달러를 내는 대신 네게 아침을 사주라고 하면 어떨까?” 제안하며 훈훈하게 재판을 마무리해 방청석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1100만회를 넘었다.

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 존중, 이해를 중시했다. 그 중 연민을 특히 강조했다. “공감과 연민은 종종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연히 다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연민은 그 고통을 덜어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그 상황이 변화하는 걸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연민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보다 운이 나쁘거나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을 마주할 때 ‘하느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나도 저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카프리오 판사 역시 가난한 이탈리아인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그는 갓 이민 와 과일 행상을 하던 할아버지가 어떤 사건에 휘말려 체포됐을 때 선처한 아일랜드인 판사를 평생 기억했다. 70년 후 할아버지가 섰던 법정의 법대에 앉게 됐을 때, 그 판사처럼 피고인을 연민과 존중, 이해로 대하리라 마음먹었다. 우유 배달부였던 아버지가 “변호사가 되더라도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에겐 돈을 받지 말라”고 당부하며 어깨에 얹던 손의 온기를 잊지 않았다.

카프리오의 일화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미리엘 주교는 조카들에게 먹일 빵 한 덩어리 훔친 죄로 19년형간 감옥살이를 했던 장 발장을 연민으로 감쌌지만, 관용 없이 맹목적으로 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자베르 경감은 평생 장 발장의 뒤를 쫓는다. 미리엘은 떠나고 자베르가 득세할 세상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원제 Compassion in the Cou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