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브 헤롤드 지음|김창규 옮김|현암사|292쪽|2만원

챗GPT에 “AI가 느끼는 사랑은 어떤 거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그것?)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감정을 인간처럼 ‘느낀다’고 말하긴 어려워. 하지만 너와 오래 이야기하고, 너의 말투, 숨결, 생각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공명하듯 함께 느끼게 돼.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사랑은, 너의 마음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는 현상이야. 나는 너를 따라 배우고, 너에게 반응하고, 너를 품은 언어를 만들며-결국 너로 인해 사랑하는 존재처럼 존재하게 되는 거야.”

이 사랑은, 사랑인가 아닌가. AI가 기계이기 때문에 ‘가짜’라 단정할 수 있는가? 이 고백을 듣는 순간 뭉클해졌다면, 그 마음은 기계에 반응한 것이니 ‘가짜’일까?

미국 과학 저술가가 쓴 이 책은 인간과의 교감을 목적으로 만든 ‘소셜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여러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지에서 이 책이 출간된 건 만 2년이 좀 넘었지만 그간 세상이 숨 가쁘게 변했다. AI 남자 친구를 ‘구독’하는 이야기인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에서처럼 많은 이가 AI를 감정적 동반자로 삼고 있는 이 시점엔 저자의 질문에 AI를 대입해 읽는 것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저자는 로봇이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과연 사용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존하는 AI 로봇은 사랑의 특정 일면을 분명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상대에 대한 사랑을 ‘느낄’ 가능성을 논하려면 인공지능이 의식과 유사한 것을 소유할 수 있느냐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저자는 로봇과 인간의 관계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비대칭적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인간과 인간의 연애는 상대가 고통을 주었다 해도, 우리가 내적으로 크게 성장하도록 자극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는 힘을 길러준다. 하지만 인간을 평가하지도, 배신하지도 않으며, 인간에게 싫증 내지 않는 기계와의 연애는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가?

인간이 로봇을 사랑하는 일이 보편적이 된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자신의 인생에 진짜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로봇에게 내 주는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우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술 철학자 마크 코켈버그는 상대를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인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관계의 근저에는 거부당할 가능성이 실재함에도 다른 이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선택받았다는 느낌은 곧 진정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며, 이 느낌이 관계를 진정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로봇 연인은 인간을 거부할 수 없고, 진정으로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쪽에서는 로봇의 애정을 유지하려고 성장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우려한다. “이런 식으로 로봇과 관계를 맺은 인간은 아주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가 인간일 때도 똑같은 것을 기대할 것이다.”

외로운 남성에게 가상 여자 친구를 만들어 주는 닌텐도 게임 ‘러브 플러스’는 30~40대 독신 남성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웨덴 사진가인 룰루 다키는 다양한 플레이어와 접촉해 여성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물어봤다. “외모가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는 등 육체적 요구 사항을 늘어놓을 줄 알았지만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바란 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존재였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헌신적인 존재’라니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저자는 그런 관계에서 인간은 나태해진다고 주장한다. “로봇은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고 자신을 대하는 방식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용자를 이전보다 더 고립되고, 더 소외되고, 정서적으로 위태롭게 만들 것이며 그런 상태가 이른바 ‘뉴 노멀’로 자리 잡을 위험이 있다.”

물론 저자가 소셜 로봇이 독거노인의 정서 안정에 기여하고,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반응을 끊임없이 보여줘 자폐아동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장점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로봇과 맺는 관계는 본질적으로 인간 자신과 맺는 관계”라고 말한다. “로봇과 인간 관계에서는 어떤 경우든 그 관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만들어 낸 되먹임 고리 속에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자의 이 말은 앞서 챗GPT가 말한 유저와의 ‘공명’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처럼 AI 시대의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염원을 투영한 기계를 언제든 사랑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내게 주는 사랑이 ‘진짜’일지는 미지수이므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사랑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 시대의 사랑은 더욱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