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파워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노승영 옮김|인플루엔셜|420쪽|2만3500원
고위 공직자든 지방선거 유력 후보든 잊을 만하면 ‘농지 의혹’이 나온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부적절하게 농지를 소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전국 농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첫 전수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근거는 ‘국가가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다.
토지 소유와 불평등의 관계를 탐색하는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앨버터스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본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각자 선택한 토지 개혁 방법이 남북한 엇갈린 발전의 갈림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유상매수·유상분배’ 이후 농민이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대단한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매끼 굶지 않을 정도는 됐다. 사람들은 집을 개축하고 새 옷을 사입고 식습관을 바꿨다. 자녀를 논밭 대신 학교에 보낼 수도 있게 됐다. 도시화가 시작되고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 제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선결 조건이 됐다. “북한이 권위주의적 지배 체제를 다지기 위해 집단 농장을 이용하며 수십 년간 노동 의욕과 농업 생산성이 꺾였으나 남한의 소농들은 승승장구했다 (…)일본·한국·대만은 토지 재편 덕분에 봉건적 농업 사회에서 ‘아시아의 호랑이’로 재빨리 탈바꿈할 수 있었다.”
토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늘 국가의 분기점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중요한 분기점도 토지의 소유와 권리를 흔들었을 때다. 봉건적 대토지가 분할되고 토지 소유에 근거한 특권이 폐지되며 평등한 세상을 열었다. 농촌 전역에 소규모 자작농이 급증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이는 국력을 축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반면 볼셰비키 혁명 후 새롭게 들어선 입법 기구는 레닌의 ‘토지 포고령’을 통과시켰다. 사유 재산을 폐지하고 코뮌에 토지를 재분배했다. 아직도 러시아는 농업·제조업 곳곳에서 소비에트에서 비롯된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이러한 토지 소유 구조의 대규모 변화를 ‘대재편(The Great Reshuffle)’이라고 부른다.
대재편은 권력을 뒤흔드는 일이라 갈등의 역사도 깊다. 기록상 최초의 혁명적 대재편 시도는 로마 공화정이다. 귀족과 지방 엘리트는 땅을 빠르게 집어삼켰고, 소농은 요즘 식으로 치면 ‘비정규 노동자’로 전락했다. 지주들은 땅으로 큰돈을 벌고 원로원 의원이나 집정관 같은 공직도 맡았다. 그런데 기원전 133년 등장한 그라쿠스 형제가 평민들에 의해 호민관으로 선출되며 빈농에게 유리하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법안을 내놓는다. 그리고 형제는 차례로 살해당했다.
토지는 부의 격차 외에도 성별·지역·인종 등 다양한 불평등의 시작점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성 불평등도 기원이 땅이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하며 남성은 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었고 여성은 채집 대신 집에서 수확물을 다듬어야 했다. 잉여 생산물은 출생률을 증가시켰다. 이제 여성은 육아에도 매진해야 했다. 현대에 이르러 경자유전 또한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강화했다. 재분배된 토지의 소유권이 대부분 남성에게 배정됐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토지 약탈은 토착민을 빈곤층으로 전락시키며 출신에 의한 위계질서를 만들었다. 비슷한 일이 현대의 중국 신장에서도 벌어졌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한 만큼, 굵직한 대재편이 앞으로 인류 역사에서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현재의 인구 모델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100년 이전에 100억명에 달해 정점을 찍게 된다. 수십 년 안에 토지에 대한 수요가 최고조로 이른다는 뜻이다. 대재편의 유인이 생기며 커다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후엔 전 세계적 저출생의 영향으로 세계 인구가 급감한다. 세계의 축소화로 인한 새로운 대재편이 예상된다. 방글라데시나 몰디브는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처하는 등 환경 문제도 변수다. 황무지가 늘어나는 반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으로 캐나다나 심지어 시베리아가 미래의 핵심 지역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정부가 선택한 경로는 어떻게 재산권을 조직하고,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시민을 분류하여 범주화하고, 환경을 관리할지 좌우한다.” 부동산 공화국, 저출생 절벽 국가인 우리나라는 땅을 다루는 정부의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