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엘리베이터, 도서관의 공통점은? 이희영의 소설 ‘안의 크기’(허블)에 따르면 모두 가장자리부터 사람들로 채워지는 공간이다. 이 소설 또한 중앙에서 먼 곳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기게 만든다. 그곳에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문이 있다. ‘페인트’, ‘페이스’ 등의 소설에서 청소년의 고민과 성장을 다루었던 작가는 ‘안의 크기’를 통해 30대 인물의 성장통을 그려냈다. 하루하루가 초보처럼 서툴기만 한 사람들에 대해서.
시련은 때를 가리지도 않고 온다. 주인공 설우에게 권고사직과 연인의 이별 통보가 동시에 닥쳤다. 연초부터 일과 사랑 모두를 내려놓은 그녀는 급기야 첫 독립까지 감행하게 된다. 삶의 터전을 ‘흑호동’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충동적인 이사였지만, 감정이든 커피든 함부로 쏟아버리지 못하는 이의 절박함으로 읽힌다. 설우는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한 매물, 많은 사람이 꺼릴 만한 사건을 겪은 집을 선택한다.
그 집에 익숙해진 뒤로도 설우는 전 세입자를 종종 떠올린다. 그가 보았을 창밖 풍경에 자신의 시선을 겹쳐 두기도 한다. 설우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엄마 뱃속에서 쌍둥이 중 한쪽이 소멸하는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을 겪고, 왜 내가 태어나고 네가 소멸한 것인지를 두고두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잊지 않는 사람. 나에게만 들리는 너의 목소리, 육체가 없는 푸른빛에게 ‘조’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빛이라는 뜻이다. 그 빛은 어느새 ‘빚’으로 이어진다. 설우가 서점에서 커피를 엎지르는 바람에 주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생긴 것인데 상환 방식이 특별하다. ‘이토록 달콤한 빚’이라니 싶을 정도로.
소설이 건넨 질문을 음미한다. 행복의 반대말이 ‘안 행복’이라면, 그리고 그 ‘안’을 줄여나갈 수 있는 거라면? “하나의 안이 사라지면, 또 다른 안 행복의 조건들이 인생의 물컵을 채울 테니까”(169쪽).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이들의 대화에 마음을 두다 보면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방향을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헤매더라도 혹은 망하더라도 “그 과정을 반복해서 견디는 게 삶”(169쪽)이라는 것을. 각자의 ‘안’과 고군분투 중인 이들 곁에 가만히 내 것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