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첫날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를 보았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다소 헐겁다 싶었지만 두 시간이 훅 지나갈 만큼 재미있더군요. 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서사가 정교하지 않은데도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란 과연 무엇인가. 배우들의 호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고향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류승완 감독이 인터뷰어 지승호와 나눈 이야기를 엮은 ‘재미의 조건’(은행나무)을 읽었습니다. 류승완은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자문하며 말합니다. “불이 꺼지고, 다시 켜졌을 때 내 감정이 변해 있던 그 순간, 그 감정을 다시 만들고 싶었다.” 좋은 예술은 이를 향유한 인간을 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변화의 순간 찾아든 감정을 몇 번이고 다시 경험하고 싶게 합니다. 다시 느끼고픈 감정의 색채는 다양하겠지만, ‘재미’라 통칭해도 무리가 없겠지요.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도 별점과 데이터 등으로 판단을 내려버리는 시대, 류승완은 관객의 답이 ‘봤다’가 아니라 ‘안다’로 바뀐 세태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영화는 늘 위기의 예술이었다”며 말합니다. “마치 마술쇼를 보기 전에 트릭을 검색해 버리는 것 같은 시대, 그곳에서 영화는 어떻게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 해답은 여전히 경험의 농도에 있다.”
레거시 미디어인 신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OTT 시대의 극장 영화를 논하는 장면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이제 영화는, 더 이상 상영 시간이나 극장의 어둠만으로 감정의 깊이를 전달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극장에서만 가능한 무언가를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종이 신문에서만 가능한 무언가로 독자 여러분께 신문을 펼치기 전과는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Books가 매주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