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루시 워즐리 지음 |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584쪽 | 3만원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 세트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전 6권 | 10만5000원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가 올해로 사후 50주기를 맞았다. 이를 기념해 관련 콘텐츠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책은 물론, 지난달에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국 드라마 ‘세븐 다이얼스’가 공개됐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책을 판 작가로 꼽힌다. 대단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나, 살아 생전 직업란에 ‘작가’라고 쓰는 대신 ‘주부’라고 쓰곤 했다고 한다. 대중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루시 워즐리는 책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에 이렇게 쓴다. “애거사는 늘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관점을 유지했다. 자신을 정의하려는 세상을 늘 비켜 나갔다.” 지난달 출간된 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 덕후’라면 필독할만하다. 작가의 생애를 통해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이 비범한 작가는 “삶과 예술이 뒤섞인”(저자의 표현이다) 흥미진진한 삶을 살았다.

애거사는 1890년 영국 데번주에서 미국인 프레더릭 밀러와 영국인 클라라 보머 부부의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대저택 애시필드에서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부유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러나 1890년대 후반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1901년 아버지 프레더릭의 사망으로 삶이 급변한다. 그해 집안의 자산 관리인이 호텔방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했는데, 이는 어린 애거사에게 큰 충격을 남긴다. 소설 ‘나일강의 죽음’(1937)에 부정한 자산 관리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946년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의 집 타자기 앞에 앉았다. 그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12년이 지나서야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 전에는 침대 머리맡, 식탁 등 어디서든 썼다고 한다./황금가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애거사는 간호사로 적십자 자원봉사에 나선다. 이후 병원 약국에서 직업 훈련을 받는다. 조제실에서 독극물에 대한 지식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탐정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쓴 탐정 소설 66권 중 41권에 독극물을 이용한 살인·살인 미수·자살이 나오는데, 갈고닦은(?) 독극물 지식을 잘 활용해 소설에 녹인 셈이다. 당시 ‘약학 저널’은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1921)에 대해 “약물을 잘 알고 다루었다”는 칭찬을 담은 서평을 쓰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독’을 쓰는 것은 탐정 소설에선 반칙처럼 여겨지는데, 애거사는 이를 잘 피해 나갔다.

1926년은 애거사를 충격에 빠뜨린 해다. 남편 아치볼드 크리스티의 외도에 애거사는 행방불명 소동을 벌인다. 한밤중에 차를 타고 나간 뒤 11일 동안 종적을 감춘다. 사고를 당해 망가진 차가 외딴 도로에서 발견된다. 차 안에는 운전면허증·모피 코트·여행 가방·서류 가방만 남겨져 있었다. 마치 탐정 소설의 도입부 같다. 이후 요크셔주 헤러게이트 스파 리조트에서 다른 사람(심지어 남편의 외도 상대 이름을 썼다)으로 행세하다가 발견된 애거사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답한다.

이 사건을 둘러싼 진실은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문학적 의미는 뚜렷하다. 애거사의 작품이 심연을 파고들기 시작한 시점이다. 저자는 “애거사가 진정으로 고딕적인 작가가 되었다”며 “악이 가장 안락한 가정에도 들어올 수 있고 반드시 들어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고딕”이라고 쓴다.

혼란 속에서 탐정소설이 아닌 소설 ‘인생의 양식’(1930)을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발표한다. 버넌이라는 인물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잃는데,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다시 기억을 찾는 내용이다. 필명으로 쓴 소설들은 추리소설 장르를 벗어난다. ‘두 번째 봄’(1934)은 한 여자가 타인과의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 무너지고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반갑게도 ‘메리 웨스트매콧 컬렉션(전6권)’이 다음 달 출간을 앞두고 있다. 실종 사건 이후 1930년부터 1956년까지 ‘여성’의 삶을 주제로 쓴 여섯 편의 장편소설이다. ‘인생의 양식’과 ‘두 번째 봄’ 외 ‘봄에 나는 없었다’ ‘딸은 딸이다’ ‘사랑을 배운다’ ‘장미와 주목’ 등. 살인과 범죄 대신 인간의 비틀린 마음속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로 못다 한 이야기를 살피는 것도 그의 사후 50주기를 기념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크리스티 작품 오디오북 PICK 3

애거사 재단의 공식 완역본인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은 출판사 황금가지가 보유하고 있다.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주간이 추천하는 애거사 크리스티 독서법은 ‘오디오북’. “성우들의 열연과 긴박감 넘치는 연출로 활자와 다른 오디오북만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 그가 세 권을 추천했다.

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강렬한 서스펜스로 대표작이 된 작품.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졌다.

②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추리 소설 입문작으로 좋다. 대표 탐정 푸아로에 빙의한 김현수 성우의 연기가 일품.

③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반전의 대명사인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반전으로 손꼽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