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던컨 웰던 지음|윤종은 옮김| 윌북|360쪽|2만4800원

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권지현 옮김|아카넷|360쪽|2만5000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는 24일이면 딱 4주년을 맞는다. 협상이 지지부진해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쟁은 인류가 집단적으로 벌이는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행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윌북)는 바로 이 경제학의 시선에서 이 전쟁을 바라본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돌아보게 한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 세계가 러시아의 승전을 점쳤다. 서방은 한술 더 떠 러시아의 압도적인 무력이 전쟁을 며칠 내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미국은 전쟁 개시 몇 주 전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예측하고 세계에 경고했으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거의 없었다. 며칠 내로 끝날 전쟁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을 뿐, 무기와 훈련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은 러시아 침공으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2022년 봄이 되어서야 제공했다.

이 책은 서방의 군사 지원이 전쟁 발발 전 이뤄졌다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본다. 푸틴은 경제 제재에 따른 피해보다 군사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리라 보는 전문가가 많다. 프랑스의 지정학자 다비드 퇴르트리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이 대응에 나서면서 2014년 무렵부터 러시아는 이미 경제 제재에 익숙해졌고 전산과 은행 분야에서도 자립성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본다.

왜 서방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했을까. 2014년 7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젤레노필리아’ 마을을 공격했을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피해가 컸던 이 전투는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작성한 백서에도 포함되며 이목을 끌었다. 2020년에는 미 육군의 공식 전술 교범에도 실렸다.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 전투를 열압력탄을 비롯한 무시무시한 러시아제 무기의 위력과 체계적 전술이 합쳐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해석이 과도했다는 것은 러·우 전쟁 발발 후 곧바로 증명됐다. 2022년 말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러시아군을 이렇게 설명한다. “러시아군은 방공망 제압 등 복잡한 전술에 숙달하지 못했다. 기갑 부대는 하차 보병 지원도 없이 도시에 진입했다. 열악한 통솔력과 보급 능력, 낮은 사기 등 고질적인 문제가 많았다.”

서방이 러시아를 정확하게 알았다면 전쟁 발발 가능성이 달라졌을 거란 책 내용이 결과론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사진은 2022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돈바스 전선에서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자주포를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실 서방이 기억하는 ‘젤레노필리아 전투’는 틀렸다. 이 지역은 전장과 거리가 멀었던 터라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후방의 훈련소처럼 여겼다. 이곳 군인들은 통상적인 방어 조치도 전혀 없이 장기간 기지에 머물렀다. 예비 탄약을 탄약고가 아닌 차량에 버젓이 쌓아놓고 지냈다. 여기에 러시아군의 포탄이 떨어지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탄약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큰 피해를 만들었다. 러시아군의 최첨단 기술과 전략의 승리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자멸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젤레노필리아 전투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 서방의 군 당국에서 나왔다고 본다. 민주 국가의 군 조직은 평시에 예산 확보를 위해 다른 부문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자신들이 마주한 잠재적 위협의 실체를 과장하고 싶은 유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백서 속 여러 전투 사례 중 하나일 뿐이었던 젤레노필리아 전투를 과장했다는 것. 전쟁사에서 이는 늘 반복되던 일이다. 1930년대 영국 공군, 1950년대 미 공군도 폭격기를 더 보유하기 위해 적국에 뒤처진다는 공포심을 자극했다. 냉전 시기 내내 소련의 국방비를 가장 높게 추정한 건 CIA도, 민간 분석가도 아닌 미 국방부였다. 이 아이러니한 오판의 결과가 4년째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올봄이면 이번 전쟁의 사상자가 200만명에 이를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방의 패배’(아카넷)를 쓴 프랑스의 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전쟁을 ‘서방의 자멸’이자 미국의 ‘전략적 패배’라고 규정한다. 러·우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던 세계 질서의 균열을 가시화한 사건이며, 그 이면에 서방 세계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는 것. 취약해진 미국 군수 산업은 보호국에 제공할 포탄조차 충분하게 생산하지 못한다. 국민국가와 중산층 개념이 해체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엘리트와 대중이 분리됐다.

서방 세계는 줄곧 민주주의와 자유, 규범의 언어를 되풀이했지만 정작 현실을 이해하거나 예측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전쟁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도덕적 확신만 남았으며, 분석은 신념으로 대체됐다”며 “(러·우 전쟁은) 서방 민주주의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능력의 퇴보를 드러내는 징후”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는 바이킹부터 이어지는 전쟁과 돈의 이야기를 저널리스트의 문장으로 썼다는 점에서, ‘서방의 세계’는 학자의 책 치고 학술 용어가 적다는 점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두 책이 각각 서방의 관점과 러시아적 관점을 담고 있어 전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