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복화술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330쪽 | 1만8000원

“시인들이여, 이 장르와 매체를 버리자. 이 장르와 매체를 탈출하자. 허우적거리자.” ‘김혜순 포에틱스(시학)’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과감히, 시로부터 탈출하자고 말한다. “장르에도 기득권이란 게 있다”며 “시를 쓰면서 뭘 암시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꼬집는다.

올해로 시작(詩作) 47년을 맞은 시인이 글쓰기의 원천을 밝힌다. 2023년 베를린 시 축제에서 발표한 기조연설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 전문이 실렸다. 유신 시절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시인은 붉은 사인펜과 검은 콜타르 지우개로 원고를 숱하게 검열당했다. 경찰서에 불려가 형사에게 따귀 일곱 대를 맞았다. 이후 출판사에 결근하며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시 일곱 편을 써 내려갔다. 한강 작가가 이 일화를 ‘소년이 온다’에 변용해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신은 왜 시를 쓰는가?”라는 물음에 시인은 답한다. “시인은 자신의 유령(죽음)으로 쓴다. 시인은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무한에 투사해 놓고 쓴다… 여기서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어서, 유령이 된 내 목소리가 자꾸만 생성되는 유령을 구축한 것이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