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문학동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덮었다. 탐정 역할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심혈을 기울이며 쫓았던 수수께끼의 진상은 허무했고, 조연인 여성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능력은 만화 같았다. 속편인 ‘밀레니엄: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밀레니엄: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한동안 펼치지 않았다. 속편들은 1편보다 더 두껍기도 했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는 784쪽,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856쪽이다.

뒤늦게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읽으며 내가 밀레니엄 시리즈의 장르와 주인공을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밀레니엄 3부작은 추리물이 아니라 슈퍼히어로 카테고리에 속하는 시리즈였고, 주인공은 미카엘이 아니라 리스베트였다. 리스베트가 상대해야 하는 슈퍼 악당도, 슈퍼 악당의 주먹 역할을 하는 중간 보스도 2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슈퍼히어로물의 공식대로 리스베트와 슈퍼 악당은 질긴 인연으로 묶여 있다.

슈퍼히어로물의 재미는 리얼리티나 복잡한 퍼즐 풀기에 있지 않다. 독자나 관객이 히어로와 자신을 얼마나 동일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주인공의 약점과 숙적의 상징성이 중요하다. 보는 이가 ‘나도 저게 콤플렉스인데! 나도 저들이 진저리 나게 미운데!’ 하고 속으로 크게 외칠수록 성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는 늘 그 시대 대중의 집단적인 분노와 공포를 반영한다.

리스베트의 약점은 몸이 왜소하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스베트의 적들은 깊은 곳에서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여자를 우습게 보는 남자들’이다.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와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슈퍼히어로물의 범위 안에서 적당한 개연성과 사실성을 갖췄다. 그 장르의 쾌감도 확실히 전해준다. 관건은 리스베트의 약점과 분노에 당신이 얼마나 공명하느냐다. 열광하면 그녀의 폭행, 절도, 협박, 살인 미수를 다 눈감아 줄 수 있게 된다. 나는 제법 산뜻한 기분으로 밀레니엄 시리즈 2, 3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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