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내가 대신 전해줄게.”
2009년 8월 서울대공원 동물원. 철창을 붙잡고 서 있던 45cm 남짓한 돼지꼬리원숭이의 작은 손을 본 순간 사진가 비두리(44·본명 박창환)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인데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한두 번 찍고 끝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정기적으로 동물원을 찾기 시작했고, 15년간 500번의 방문 끝에 첫 에세이 ‘500번의 동물원 탐험’(효형출판)을 펴냈다.
화려한 쇼가 끝난 뒤 텅 빈 공간에 남겨진 동물들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한국의 마지막 북극곰 통키, 반출 논란의 침팬지 관순이, 인공 포육장에서 자란 오랑우탄 보물이, 판다 푸바오까지. 그는 열화상 카메라로 동물의 체온을 시각화해 차가운 쇠창살과 대비되는 붉은 온기를 포착했다. 이름을 불러내는 순간 ‘구경거리’였던 존재는 하나의 삶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동물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물원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릴 땐 귀엽다며 애칭으로 부르지만, 관심이 식으면 쉽게 잊습니다. 집단 폐사가 나도 잠시 안타까워하다가 곧 다른 뉴스로 넘어가죠.” 존재를 소비하고, 감정을 빠르게 소진하는 방식이 인간 사회의 관계 맺기와도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은 2022년 서울대공원 남미관에서 우결핵으로 희귀 동물 50여 마리가 집단 안락사된 사건을 계기로 더 또렷해졌다. 큰개미핥기 모녀 ‘밍밍’과 ‘꾸리’도 그 안에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시설 공사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문이 닫혀 있던 이유를 알고 나서야 묻게 됐어요. 우리는 그 죽음들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있는가, 그 존재를 끝까지 바라볼 준비가 돼 있었는가.”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남아 있다. 2024년 세상을 떠난 코끼리 사쿠라, 2023년 시베리아 호랑이 태백이처럼 “책에 한 줄로만 적어야 했던 죽음들을 모아 다시 쓰고 싶다”고 했다. 한때 사랑받았지만 잊힌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 그가 지금도 동물원을 찾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