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넥
댄 왕 지음|우진하 옮김|웅진지식하우스|424쪽|2만2000원
세계 자유주의 진영은 오랫동안 중국이 실패할 거라고 전망했다. 중국 공산당 체제는 소련과 같은 결말을 맞을 거라고. 하지만 중국은 전에 없던 정부 주도 시장 경제로 세계 기술·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화웨이·BYD 등 중국 기업들은 압도적인 속도(Breakneck)로 성장을 이끌었다. 반면 혁신의 중심지였던 미국은 자국 생산 역량을 잃어버렸다. 중국 태생, 캐나다 국적의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인 저자는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 ‘변호사의 나라’ 미국이라는 렌즈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중국은 마오쩌둥 이후 ‘공학 국가 정신’으로 뭉쳤다. 덩샤오핑은 1980~90년대 ‘공학자 정부’를 만들었다. 2002년엔 최고 의결 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다. 후진타오와 시진핑 주석 모두 칭화대 공대 출신이다. 주요 보직에 현장 공학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있었다. 미국으로 치면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사장이 장관이나 주지사가 된 셈이다. 의사결정과 실행도 빨랐다.
엔지니어 정부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이는 과거엔 중국을 내리깔아보던 용어였지만, 지금은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는 수단이었음이 입증됐다. 1980년대만 해도 옷가지를 만들던 선전은 2007년 세계 최대 아이폰 조립기지가 됐다. 선전의 노동자들은 각종 전자 제품을 조립하며 기술을 익혔다. 현장 관리자와 전문가들은 화창베이의 폐기장을 돌아다니며 남은 부품으로 무엇을 만들지 고민했다. 지금 세계는 선전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부른다. 중국 내 제조업 종사자는 1억명으로 미국(1300만명)의 8배에 이른다.
반면 미국은 ‘법조인 정부’다. 미국 역사 전체에서 공학을 전공했거나 관련 실무를 해본 대통령은 단 두 명이다.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대통령·부통령 후보는 모두 법학을 전공했다. 하원의원의 절반 가량이 법학 학위가 있었다. 순수 과학이나 공학 전공은 손에 꼽았다. 사회의 변호사 수도 인구 10만명당 400명 수준이다. 유럽 평균의 3배에 달한다. 이 책이 인용한 뉴욕타임스의 2024년 ‘NBA 스타보다 더 많이 버는 변호사 등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의미심장하다.
물론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법률가의 기여도 있었다. 능숙한 법률 서비스는 수조 달러 가치의 기업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조인 중심의 미국 사회는 혁신이 아닌 규제에 능했다. 소송 위주의 사회는 공학에 대한 열정을 잃게 만들었다. 과거 미국은 금문교, 후버댐 등 거대 구조물을 만드는 데 최고의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1960년대 환경 파괴 등의 문제가 제기되며 각종 규제가 생겨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미국의 플랫폼과 금융업은 점점 발전했지만 생산 역량을 잃어갔다. 반도체도 설계에 집중하고 생산은 해외에서 진행했다. 인력과 경험, 지식이 전수되지 못했다. 미국 국가핵안보국은 최근까지도 핵폭탄 제조에 꼭 필요한 ‘포그뱅크’라는 기밀 부품마저 직접 만들지 못했다. 생산 기록도 남지 않은 데다 공정을 아는 실무자들은 모두 은퇴한 후였다. 이를 복원하는 데 6900만달러(약 1000억원)를 써야 했다. 하다 하다 사회 기반 시설조차 중국에 밀려버렸다고 한다. “나는 중국을 찾을 때마다 가장 가난한 지역조차 미국의 가장 부유한 지역보다 더 우수한 사회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늘 빨랐고 미국은 느려지고 있다. 2008년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1300㎞ 규모의 고속철도 대공사를 시작한다. 불과 3년 뒤 노선이 개통됐다. 이 책은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모든 고속철도망을 합친 것보다 긴 철도망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같은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고속철도 1200㎞ 건설을 추진한다. 17년 후, 정작 완공된 건 캘리포니아 내륙 두 도시를 잇는 짧은 구간뿐이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역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고 노선은 점점 굽어졌다. 첫 운행 시점은 2030년대가 될 전망이다.
책의 대부분이 중국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마냥 찬양만 하는 책은 아니다. 강압적 통제 조치가 있었던 ‘제로 코로나’ 정책, 35년간 3억건 이상의 임신 중절을 부른 ‘한 자녀 정책’ 등 공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중국 사회의 부조리도 짚는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중국 청년과 엘리트, 부유층 등이 중국을 떠나는 ‘룬(潤·부유함을 뜻하는 중국어와 영어 run의 발음이 유사)’ 열풍이 불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지난해 발간된 이 책은 트럼프 2기와 최근 AI 산업의 급격한 성장을 깊게 다루진 않는다. 하지만 미국보다 수배 많은 중국의 전력 생산량, 미·중 양국에서 주요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 AI 인재를 고려하면 이 논리는 여전히 이어질 것 같다. 우리나라 제조업 규모는 미국보다 한참 작은데 ‘법조·의대 공화국’ ‘규제에 멈춘 나라’ 등 각종 단점이 모두 미국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느껴진다. 전문 학술서가 아닌 덕에 논픽션처럼 쉽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