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만들기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392쪽 | 2만5000원
서울 강남역 일대를 걷다 보면 성형외과가 발에 채도록 많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그 수에 압도되곤 한다. 한 건물에 각기 다른 성형외과가 층층이 들어선 경우도 흔하다. 강남역 사거리는 고객들로 넘실거린다. 선글라스는 기본. 코에 부목을 대거나 붕대를 감은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닌다. ‘성형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오늘날 눈이나 코 성형은 ‘수술’이 아닌 ‘시술’처럼 여겨진다. 마취를 동반하는 엄연한 외과 수술이지만, 마음만 먹으면(물론 돈도 있어야 한다)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용 목적으로 얼굴에 칼을 대는 일을 그 누구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요즘은 중안부(눈썹부터 인중까지)가 길면 얼굴이 길어 보인다고 중안부 축소 수술을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광대뼈나 턱뼈 등 얼굴뼈를 깎아 매끄러운 얼굴선을 만드는 안면 윤곽 수술도 꾸준히 인기다.
성형 수술의 태동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부상병이 넘쳐나던 시기에 이 기술은 싹텄다. 전투 중에 양쪽 눈·코·위턱을 잃은 병사가 다시 일상생활을 하려면 꼭 필요한, 위험천만한 수술이었다.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럴드 길리스(1882~1960)는 전쟁 당시 얼굴을 다친 병사들의 안면 재건에 힘쓴 외과 의사다. ‘수술의 역사’를 쓴 논픽션 작가 린지 피츠해리스가 길리스의 삶을 중심으로 초기 성형 수술의 역사를 살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한 뉴질랜드 출신 의사 길리스는 적십자사에 들어가 1915년 프랑스에 파견됐다. 그는 이곳에서 포탄·파편·저격 총탄 등으로 끔찍한 얼굴 부상을 당한 남성들을 만났다. 망가진 얼굴과 이로 인해 자존감이 땅바닥까지 떨어진 병사들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수술에 임했다.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얼굴 재건술이 필요한 부상병이 넘쳐났기에 길리스는 끊임없이 수술을 진행했고, 그 결과 안면 수술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었다.
케임브리지 군 병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길리스는 병동에 거울을 금지했다. 새로 오는 환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한편, 재건 수술 중에 환자들이 얼굴을 보고 충격받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재건 수술 중에 거울을 본 한 병사가 점점 의욕을 상실하는 등 망가진 얼굴이 마음을 망가뜨리는 사례가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1917년부터 길리스는 영국 시드컵의 퀸스 병원에서 안면 재건 수술을 이어나갔다. 이곳에서 혁신적인 발견이 이뤄졌다. 길리스는 이를 ‘관 모양 줄기 피판(tubed pedicle)’이라고 불렀다. 잘라낸 피부판의 양쪽 끝이 두루마리처럼 안쪽으로 말리는 원리를 활용했다. 피부판의 양쪽 끝자락을 이어서 봉합하면 관 모양이 된다. 관 형태의 피판은 감염 위험이 적고, 혈액 공급도 원활히 이뤄지는 이점이 있었다. 안면 재건술의 일대 발견이었다. 길리스의 동료들도 이 방법에 열광했다고 한다. “시드컵 병원은 달랑거리는 줄기 피판이 우글거리는 버마 정글 같아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길리스는 1930년 제1차 세계대전 때의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민간 성형외과라는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었다. 당대 의학계는 “재건 수술은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이고, 미용 수술은 정상을 넘어서려는 시도”라며 길리스의 시도에 비판적이었다. 그 역시 고민이 깊었던 듯하다. 길리스는 “얼굴 주름을 제거하다가 문득 내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수술을 받은 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환한 표정을 볼 때면 과연 환자를 거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성형 수술이 단순한 ‘돈벌이’에 그쳤던 것은 아닌 듯하다. X선을 쬐다 얼굴에 궤양이 생긴 여성들을 치료했고, 얼굴 재건 외에도 제2차 세계대전 때와 그 뒤 부상병의 생식기를 재건하는 수술도 했다. 1949년 그는 줄기 피판을 활용해 성전환 남성의 음경 성형 수술에 성공한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다. 길리스를 타임머신에 태워 강남역 사거리에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