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로렌스 스턴 소설 |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906쪽 | 1만8000원

1759년부터 8년에 걸쳐, 총 9권으로 출간된 로렌스 스턴의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랄함, 라블레의 명랑함, 세르반테스의 엉뚱함을 잇는 풍자의 계보를 완성한 작품이다. 173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공회 교구 목사로 평범하게 살던 스턴은 40대 중반에 이 책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이 책에서 트리스트럼의 ‘인생’이나 ‘생각’에 관해 알 수 있는 내용은 미미하다. 1718년 3월 수태된 트리스트럼은 책의 3권 27장에 이르러서야 ‘최신’ 의술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의 몸 밖으로 겨우 끄집어내지고(난산이었다!), 4권 14장에서 성명학에 일가견 있는 그의 부친이 평소 극렬히 비판했던 ‘트리스트럼(비탄에 잠긴 사람)’이라는 이름을 (일련의 착오로) 얻게 되지만, (의료 사고로 코가 심하게 짜부라진 채 태어났음에도) 그는 삶의 끝없는 슬픔과 고난에 익살로 맞서는 유쾌한 작가가 되었다, 라는 정도다.

그렇다면 소설이라 부르기 매번 망설여지는 이 두툼한 책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트리스트럼 주변의 여러 인물들, 부유한 무역상이자 논리적으로 우기기의 귀재인 아버지 ‘월터’, 마을의 산과 의사 ‘슬롭’, 교구 목사 ‘요릭’, 아버지의 동생으로 상이 군인이며 자기 집 마당에 모형 진지(陣地)를 구축하는 데 일생을 건 ‘토비’ 삼촌, 그리고 삼촌의 충직하고 말 많은 하인 ‘트림’ 등의 생애와 견해가, 꽤나 산만하고 적잖이 참신한 글을 쓰는 ‘필자’ 트리스트럼의 깃펜 아래서 중구난방 펼쳐지는 것이다.

‘18세기에 쓰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평가되는 ‘트리스트럼’은 줄거리가 명확하고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스턴에게 글쓰기란 독자에게 말을 거는 일종의 대화고, 흥미로운 대화의 요체는 ‘맥락을 벗어난 이야기(digression)’에 있다. 따라서 “주제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전진해 나가는” 이 작품은 세상에 만연한 어리석은 신념들을 조롱하고, 뻔뻔스러운 무지를 질타하며, 사유로부터 길어 올린 묵직한 삶의 지혜를 전수한다. 가령, 이런 것. “인생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자유를 두려워하는 죄수를 보여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