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레볼루션
스티븐 G. 맨디스 지음|김인수 옮김|세이코리아|496쪽|3만5000원
UAE(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두바이에 가보면 수많은 테마파크가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다. 페라리 월드와 레고랜드, 워너브러더스 월드 등 저마다 ‘킬러 콘텐츠’를 앞세운 명소들 사이로 ‘레알 마드리드 월드’도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은 레알 마드리드 스타 주드 벨링엄의 사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응원 구호에서 이름을 딴 롤러코스터 ‘Hala Madrid(마드리드 파이팅)’를 타며 비명을 지른다. 스페인 축구 클럽의 이름을 내건 테마파크가 중동 두바이에 들어설 만큼 레알 마드리드는 이제 스포츠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를 연고로 한 이 팀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클럽 중 하나로 꼽힌다. 스타들이 넘치게 많아 한때 ‘갈락티코(은하수)’란 별명이 붙었던 팀답게 이뤄낸 성과도 눈부시다. 축구에서는 유럽 최고 클럽을 가리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가 가장 권위 있고 수준 높은 무대로 통하는데 이 대회에서 최다 우승(15회)을 자랑하는 레알 마드리드는 그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다섯 번의 우승을 최근 10년간 달성하며 그 위상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축구 실력만큼 비즈니스도 잘한다. 경영 컨설팅 전문 업체 딜로이트가 지난해 발표한 ‘풋볼 머니 리그’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는 2023-2024시즌 10억4600만유로를 벌어들이며 세계 최초로 한 시즌 수입이 10억유로(약 1조7000억원)를 돌파한 축구팀이 됐다.
오늘날 유럽 축구는 단순한 90분짜리 경기가 아니다. 중동의 거대 ‘오일 머니’와 글로벌 사모펀드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자본 전쟁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 책은 “레알 마드리드는 어떻게 계속해서 위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금융과 스포츠 비즈니스의 접점을 연구해 온 저자는 레알 마드리드가 처한 구조적 불리함에 주목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약 9만명의 소시오(회원)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비영리 회원제 구단이다. 1902년 창단 이후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가 된 적이 없으며, 회장은 선거로 선출되고 이사회는 무급으로 운영된다. 외부 투자를 받거나 지분을 매각하기 어려운 구조라 구단 재정은 중계권료와 입장권 수입, 광고 및 스폰서십 등 자체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제약이야말로 레알 마드리드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외부 자본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단기 성과나 투자자의 이해관계보다 ‘클럽의 지속성’을 최우선 가치로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소시오 앞에서 매년 경영 성과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는 무모한 베팅을 어렵게 만들고, 의사 결정의 기준을 장기적인 관점에 두게 한다. 팬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곧 클럽의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 2000년 취임한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이러한 기치 아래, ‘정정당당한 성공과 우수성을 바탕으로 회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가치를 전파하며 전 세계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다문화 클럽’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선수 영입, 재정 정책, 디지털 전략까지 모든 판단은 이와 부합하는지 검증한다.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기존 연봉 체계를 흔드는 인상을 요구했을 때, 레알 마드리드는 망설임 없이 결별을 선택했다. 이는 상징적인 스타를 붙잡기 위해 무리한 재계약을 감행했다가 재정 위기에 빠진 다른 명문 구단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스타를 떠나보내더라도 시스템을 지키는 선택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레알 마드리드는 증명한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팬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승리하고, 그 승리가 팬들의 열정을 자극해 더 큰 수익을 창출하며, 그 수익이 다시 선수 영입과 시설 투자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최근엔 숏폼으로 축구를 소비하는 Z세대를 겨냥해 자체 제작 콘텐츠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땀내 나는 라커룸과 그라운드 위의 치열한 격돌을 기대한 이에게 이 책은 다소 건조하게 읽힐 수 있다. 대신 레알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축구 산업의 작동 원리와 최근 변화의 흐름을 꼼꼼하게 짚어내며, 축구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독자의 호기심에 충실히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