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읽어온 책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려진다. 어떤 책 앞에 멈추고, 어떤 문장에 머무르는지가 그가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비춘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 것. 그런 점에서 독서란 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다.

Books의 기획 ‘The Reader’는 문인을 포함한 사회 각 분야 명사들을 만나 책에 대해 묻는다. 지금 머리맡에 있는 책은 무엇인지, 읽지 않은 걸 후회하는 책은 없는지, 어떤 책이 나를 바꿨는지….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하나로 귀결된다. “당신은 어떻게 ‘읽는 사람’이 되었나요?”

장경식 기자 소설가 김초엽을 서울도서관에서 만났다. 이날 그가 펼친 책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 김초엽은 “SF란 인간의 관점을 바꾸고 충돌하는 세계의 만남을 다룰 수 있는 장르임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초엽(33)은 지난 한 해를 숨가쁘게 보냈다. 작년 여름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펴내고 쏟아지는 홍보 일정을 소화했다. “작업하는 시기와 아닌 시기”를 칼같이 나눠 쓴다는 그는 새해를 더운 나라에서, 장편 작업에 몰두하며 보냈다. 그러나 오롯이 쓰기만 하는 시간은 아니다. “잘 안 써질 때 많이 읽는다”는 그는 이 시기에 여러 책을 독파한다. 지난해 하순부터 해외에 머무는 그가 잠시 귀국한 틈을 타 인터뷰를 요청했다. 앉은자리에서 읽기와 쓰기를 병행하는 그의 작업 패턴처럼, 인터뷰도 읽기와 쓰기를 종횡무진했다. 김초엽의 읽고 쓰는 삶을 잠시 엿봤다.

-지난해 9월 모교인 포스텍 특임 교수로 임명됐다. 어떤 수업을 하게 되나.

“특강 방식일 것 같다. 나도 대학 2~3학년 때 학교에서 창작 특강을 들었는데 윤성희 소설가, 이성복 시인이 오셨다. 그때 처음 단편을 완성했다. 얼마 전 그때 쓴 단편 파일을 발견해서 다시 읽어봤는데, 정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구나(웃음).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공모전도 냈다.”

-당신에게 ‘나를 쓰게 한 책’은.

“데이먼 나이트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작법서를 많이 찾아 읽었다. 이 책은 SF를 쓸 때 특히 유용하다. SF는 순문학 단편과 달리 아이디어, 설정 등 여러 요소를 친절하게 받쳐줘야 완성된다. 이 작가가 유명한 SF 작가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를 바꾼 책’은.

“최근에 한정하자면 아미타브 고쉬의 ‘대혼란의 시대’. 내러티브(서사)에 관한 이야기다. ‘순문학은 기후 위기를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 소설에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상황을 넣으면 소설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래서 기후 위기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런데 고쉬는 ‘수십 년 뒤에 후손들이 봤을 때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기후 위기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걸 알게 되면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다. 반성하고 경각심을 갖게 됐다.”

-자꾸 생각나는 책을 꼽자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그가 노벨문학상을 타기 전부터 좋아했다. 엄청 기대하며 읽었는데, 당시에는 별로였다. SF적으로 배경이나 주제가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고, 주인공이 안쓰럽고…. 이 소설을 SF로 여기지 않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반복해서 읽은 책은.

“어릴 때 읽은 ‘해리포터’ 시리즈랑 ‘룬의 아이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는 책을 반복해서 안 읽는다. 잘 질리는 편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전혀 없나.

“사실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은 많다. 읽고 싶다기보다 읽어야 해서…. 메리 도리아 러셀의 ‘스패로’라는 SF 장편. 캐릭터 빌딩(구축)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

-다시 읽는 책은 작업을 위한 참고서인가.

“쓸 때 자극이 되는 책들이다. 그 목록을 적어둔다.”

-최근에 자극을 받은 책은.

“가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과 R.F. 쿠앙의 ‘바벨’. 두 작품 모두 영어권에서 아주 많이 읽힌 대중 소설이지만, 깊이가 있다.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감이 좀 안 잡히다가 두 작가의 책을 읽고 갈피를 잡았다.”

-어떤 걸 해보고 싶나.

“도파민을 추구해야 더 많이 읽히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넷플릭스나 TV에서 더 잘하는 영역이다.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리되,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고민한다. 무작정 술술 읽히는 책보다는 깊이감이 있으면서 독자를 끝까지 데리고 갈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파견자들’을 쓸 때부터 하던 생각이다. 쓰고 싶은 작품의 방향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꼭 언급하고 싶은 책은.

“배명훈의 ‘타워’, 김보영의 ‘다섯 번째 감각’과 정소연의 단편 ‘입적’ 등. 고등학교 때 접한 국내 SF 소설들이다. 당시에는 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지만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각인이 되었다. 나중에 내가 SF 작가가 되는 데 정말 크게 기여한 책들이다.”

◇김초엽의 독서 습관

  • 소설에는 밑줄을 잘 긋지 않는다.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비문학은 형광펜이 없으면 독서를 안 할 정도. 여기저기 형광펜을 넣어두는 버릇은 이 때문.
  • ‘작가의 말’ 부터 읽는다. 본문 읽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차원. 그러다 스포일러를 맞닥뜨리기도 하지만 그럴 땐 쿨하게 “당했나 보다” 하고 넘기는 편.
  • 비행기나 기차에서 책을 즐겨 읽는다. 와이파이가 안 될 때, 집중해서 한 번에 몰아 읽고 싶은 책을 챙긴다.
  • 병렬독서주의자. 적을 땐 10권, 많을 땐 30권 넘는 책을 동시에 읽는다.
  • 작업하는 책상에는 책이 잔뜩 있지만, 침대 머리맡에는 책을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