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후안은 에스파냐 민담으로 전해지던 가상의 인물인데,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1624년경)를 통해 처음으로 문학 작품화되었다. 이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1787년 초연), 바이런의 풍자시 ‘돈 주앙’(1819~1824년) 등을 거치며 바람둥이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동 쥐앙’이 없었다면, 이 인물이 이토록 거듭 재해석되는 유명 캐릭터가 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천부적 희극 배우였던 몰리에르는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코메디아 델라르테(이탈리아 가면극) 배우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소극(笑劇)의 감초 캐릭터로, 주인을 놀리는 익살스러운 하인이 몰리에르 희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악행을 저지르다 천벌을 받는 권력자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대중이 즐거워하는 인과응보 서사다. 하지만 에스파냐의 ‘돈 후안’이 교훈적 비극인 것과 달리, 몰리에르의 ‘동 쥐앙’이 촌철살인의 풍자 희극이 된 것은 다름 아닌, 파렴치한 주인 동 쥐앙과 그의 능청맞은 하인 스가나렐이 주고받는 재기발랄한 만담 덕분이다.
일말의 가책도 없이 신의 이름을 걸고 거짓 맹세를 남발하는 동 쥐앙에게 스가나렐이 묻는다. “신앙심도 없으면서 선한 사람 행세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이에 동 쥐앙이 답한다. “위선은 유행하는 악덕이라고. 어떤 악덕이라 해도 유행하기만 하면 미덕으로 간주되지. 선한 사람인 척 연기하는 것은 오늘날 가능한 최고의 배역이야.”
1665년 팔레루아얄 극장에서 초연된 ‘동 쥐앙’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단 15회 공연 후 상연 금지 처분을 받았고, 작가 사후 10년이 지나도록 대본 출판도 불가능했다.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아, 위선적 신앙인을 풍자한 ‘타르튀프’를 1664년 베르사유 궁에서 초연했던 몰리에르는 교회 세력의 압력으로 ‘타르튀프’가 상연 금지되자, 이에 대한 항명으로 ‘동 쥐앙’을 썼다. 이어서 1666년에는 극단적 도덕주의자의 모순을 풍자한 ‘인간 혐오자’까지 몰리에르 성격희극 3대 걸작을 완성했다. 몰리에르 희곡선 ‘타르튀프’(열린책들)에서 세 작품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