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밥 우드워드 지음 | 김정수 옮김 | 캐피털북스 | 590쪽 | 3만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82)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돌아왔다. 그는 전작 ‘공포(Fear·2018)’ ‘분노(Rage·2020)’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매섭게 비판했다. 신작 ‘전쟁(War)’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트럼프의 백악관 탈환 전쟁 속 핵심 권력자들의 면모를 파헤친다. 노(老) 기자의 평가는 이번에도 단호하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국가를 이끌 자격도 없는 인물이다. 명백히 범죄를 저지른 닉슨보다 훨씬 더 나빴다. 공포와 분노로 통치했고 공익에 무관심했다. 역사상 가장 무모하고 충동적인 대통령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애보트 사의 코로나 진단 키트를 비밀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냈다. 미국에도 키트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다. 코로나는 러시아 전역에도 급속히 확산하고 있었고 푸틴은 본인과 충성스러운 측근이 감염될까 봐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키트를 받은 푸틴은 트럼프에게 “이걸 제게 보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트럼프는 “상관없어요. 괜찮아요” 하고 답한다. 오히려 푸틴이 “사람들이 저에게가 아니라 당신에게 더 화를 낼 테니까요”라고 말한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2021년 백악관을 떠난 이후에도 트럼프와 푸틴이 7차례 통화했다고 밝힌다.
트럼프 1기 고위 참모들은 아직도 푸틴을 떠올리면 몸서리친다. 미 정보기관들은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만장일치로 확신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 부처와 주요 민간 회사 등 전 세계 1만6000개 이상의 컴퓨터를 대상으로 한 ‘솔라윈즈 사이버 공격’의 배후도 러시아로 지목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국 정보기관이 아닌 푸틴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 헬싱키에서 푸틴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트럼프는 “그(푸틴)가 방금 러시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일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미국에선 비난이 쏟아졌고 뒤늦게 “저는 우리 정보기관 사람들을 대단히 신뢰합니다”라는 트윗을 올린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후한 편이다. “실패와 실수도 있었지만 안정적이고 목적의식을 가진 리더십”이라고 평한다. 저자가 가장 자세히 묘사하는 장면 중 하나는 2022년 가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방불케 하는 긴박한 장면이 이어진다. 미 정보기관들은 크렘린 내부의 기밀 대화 등을 종합해 “러시아군이 헤르손에서 포위된다면 푸틴의 전술핵무기 사용 명령 가능성은 50%입니다”라고 바이든에게 보고한다. 전쟁 초기 5%에 불과했던 가능성이 동전 던지기 수준으로 올라간 순간이었다.
바이든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모든 채널을 통해 러시아와 연락하라”는 지시를 시작으로 핵 옵션 차단을 위한 전방위 노력에 나선다. 미국은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와의 접촉 등으로 압력을 넣는다.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전화를 걸어 핵무기 사용 반대를 촉구했고, 시진핑도 화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푸틴은 핵무기 사용을 보류했고, 칼 콜린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이 시기를 “전쟁 전체에서 가장 간담이 서늘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바이든은 사석에서 입이 험했다. 트럼프를 칭할 땐 “그 씨X 개자식(That fucking asshole)”이라고 불렀다. 푸틴을 ‘악의 화신’이라며 “빌어먹을 놈” 등의 욕을 일삼았다. 이 책에서 바이든의 분노가 극에 달한 건 2024년 봄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그 개자식 네타냐후, 그는 나쁜 씨X놈이야. 하마스 따위는 신경도 안 써. 오직 자기 자신만 신경 쓰지.” 네타냐후는 가자 지역 전체를 파괴하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에 폭탄 4만5000개를 쏟아붓고 있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의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죽이겠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저널리스트의 간결한 문장과 명쾌한 흐름 덕에 두툼한 책이 쉽게 읽힌다. 바이든에 대한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공개되지 않은 트럼프의 수많은 말과 행동을 통해 트럼프 2기를 이해하는 맥락도 두텁게 한다. 미국 현지에선 2024년 미 대선을 3주 남겨 놓고 발간됐다. 트럼프 취임을 막으려던 이 책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