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 시집

김혜순 외 지음|허블|196쪽|1만4000원

SF(Science Fiction)라 하면 소설이나 영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시(詩)는 어떨까 궁금하다면 최근 출간된 국내 최초 SF 시집을 펴보시길. 김혜순·신해욱·이제니·김승일·김현·서윤후·조시현·최재원·임유영·고선경·유선혜·한영원 등. 시 애독자라면 깜짝 놀랄 만한 라인업이다. 저마다 고유한 세계를 구축해온 시인들이 자연·우주·무한·외계·시간·타자·사랑 등 주제를 폭넓게 아우른다. “우주는 강아지가 산책하는 넓은 운동장, 무서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그렇게 상상해요.” (조시현의 ‘크런치’)

앤솔러지 형태인 이 시집은 수수께끼 푸는 듯한 재미가 있다. 시인들이 세 편씩 시를 실었는데,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순서도 뒤섞여 있다. 맨 뒷장까지 가기 전까지는 누가 쓴 시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앞뒤 시들과의 만남 속에서 시집은 나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어떤 때는 매끄럽지만, 때론 울퉁불퉁하다. 시집의 제목이 된 최재원의 시 ‘그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인간에게만 있는 어떤 그런 것들”인지도 모른다. “용기, 호기심,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이 있잖아.” 그 고유함이 빛난다. 시인인 안태운 편집자가 사려 깊게 조율한 리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