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기묘한 오후

이언 매큐언 글 | 앤서니 브라운 그림 | 서애경 옮김 | 우리학교 | 192쪽 | 1만6800원

/우리학교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이 1994년 쓴 유일한 어린이 소설책.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받고 ‘속죄(Atonement)’ 등이 영화로 만들어진 작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고릴라’와 ‘돼지책’의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가득한 삽화를 그렸다. 부커상 수상 작가의 글에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열 살 소년 피터는 어른들에게 ‘어려운 아이’다. 음식을 가리거나 말썽을 피워서도, 지저분하거나 아둔해서도 아니다. 말이 없는 데다 혼자 있기를 좋아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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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생각한다. ‘다들 날마다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면, 세상은 더 행복해지고 전쟁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하지만 느닷없이 찾아오는 몽상은 피터의 일상에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피터는 아빠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느라 의자 등받이를 딛고 올라선 동안 딴생각에 빠졌다가 그만 아빠가 넘어지게 하는 사고를 낸다. 어린 여동생과 함께 처음 학교에 가는 버스에 탄 날엔 늑대 떼에게서 동생을 구하는 몽상에 빠졌다가 동생만 두고 내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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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될까. 피터의 상상은 엉뚱하지만 그 속에 성장의 비밀이 숨어 있다.

피터는 어린 여동생 방에서 팔과 다리가 한 짝씩 없는 심술궂은 인형 ‘못됨이’와 싸움을 벌이다 주변에 버림받고 잊힌 존재들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열일곱 살 먹은 집고양이 윌리엄과 몸을 바꿔 늘 윌리엄을 성가시게 굴던 이웃집의 사나운 수코양이를 코가 납작해지도록 혼내주기도 한다. 고양이 윌리엄은 다음 날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다. 고양이를 아끼는 아이의 마음이 애틋하다.

피터의 기묘한 오후 이언 매큐언 글 | 앤서니 브라운 그림 | 서애경 옮김 | 우리학교 | 192쪽 | 1만6800원

학교만 나오면 속에 숨어 있던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는 듯 아이들 것을 빼앗고 다니던 ‘싸움짱’ 배리의 허세를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너그러운 남자로 성장해 가는 소년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렇게 아이는 다 없어져 버렸으면 했던 가족을 향한 원망이나 얕은 시기심 같은 것들도 넘어서고 이겨낸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닷가 여름 휴가의 어느 날, 소년이 어른이 되는 순간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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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큐언은 “어릴 적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가, 벌로 반 친구들이 수영장에 간 사이 홀로 교실을 지켰던 ‘꿈꾸는 아이’, 몽상가였다”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몽상가 피터의 모험담을 읽은 여러분도 펜을 들어 몽상을 글로 써보고 싶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2005년 국내에서 초판이 출간된 뒤 20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원제 ‘The Daydreamer(몽상가)’.

영문 초판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