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 회사에서 23년간 일했던 버크 데보레. 그는 2년 전 정리 해고를 당했고 아직 새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구직자는 넘쳐나는데 일자리는 한정적이니까. 이제 실업 수당도 끊겼고,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냉담하다. 업무에 컴퓨터가 도입된 후 버크와 같은 중간 관리직은 잉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소금을 뿌린 민달팽이처럼 줄어들긴 하겠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81쪽)이라고 생각한 버크는 신문에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는다. 그와 비슷한 경력을 가졌으나 조금 더 이상적인, 그래서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구인 공고는 덫인 셈이다.
첫 피해자는 허버트 C. 에벌리로 처치워든 레인 835번지에 산다. 네 번째 희생자는 에버릿 다인스로 네더 가 264번지에 산다. 네 번째 살인 이후 버크는 자백하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프로젝트! 그는 에벌리를 죽일 계획을 ‘에벌리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다음, 그다음도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이름만 바뀔 뿐이다. 그에게 이것은 일상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버크도 스스로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정부 지도자나 CEO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는 것, 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갖는 것. 지금 버크의 목적은 그것이다.
취업 경쟁자들을 한 명씩 유인해 내 손으로 없애버리는 끔찍한 이야기, 이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버크 데보레를 기괴하게 뒤틀린 인물로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가 이 사회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이라는 사실도 읽어내게 된다. 소설 속 ‘컴퓨터’의 자리에 ‘AI’를 넣어 읽어 보기도 한다. 28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 던지는 화두가 조금도 낡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더 절박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그 강렬함에 놀라기도 한다.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가 쓴 이 작품 ‘액스’(오픈하우스)는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원작이기도 하다. 내게는 ‘올해의 소설’로 각인되었다. 읽은 시점을 기준으로 헤아려도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