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그게 내 삶을 돌봤다. 최대한 수치심을 빗겨 가자는 각오. 내 자리에서 가만히 잘하자는 결심. 거듭되는 실패와 후회. 그리고 다시 멱살을 잡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의 무한 순환. 만약 내 삶에 어떤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 순간들의 공인지도 모르겠다.”
계간 ‘창작과 비평’ 2025년 겨울호에 실린 ‘수치심의 역사’라는 산문에서 읽었습니다. 필자는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배우 박정민. 그는 이 글을 어린 시절 외가에서 “500원 줄 테니 춤 한번 춰 보라”는 어른들 말에 혼신의 힘을 다해 개다리춤을 췄으나 호응을 얻지 못해 인생 처음으로 ‘수치심’을 느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다. 다시는 누군가의 앞에서 춤을 추지 않겠다고.”
그러나 결심과는 달리 배우가 되었고, 결국 ‘1. 나서지 말기 2. 나설 거면 잘하기’라는 인생의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져버린 나라는 인간 자체가 심히 모순적이어서 내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자중하지 못하고 욕망에 굴복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운 그 시기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나설 거면 잘하기’를 명심하고 명심했다.”
지난 19일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 공연에서 가수 화사와 함께 무대에 선 박정민의 퍼포먼스가 뭇 여성에게 설렘을 안기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 오디오북 판매량이 전주 대비 20배 이상 늘기도 했죠.
박정민에게 드디어 ‘별의 순간’이 온 거라면 우연이나 행운이 아닌 ‘나설 거면 잘하기’란 노력의 결과일 거라고, 그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난 내일도 남 신경을 쓸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불가능의 벽에 또 부딪히고 거듭 좌절하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징글징글한 집착으로 하루를 채울 것이다. 편히 자기 위해서. 편히 꿈꾸기 위해서.”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