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에 수록된 최선길의 2025년작. 360x245cm./남해의봄날

“나무를 보는 순간, 뭔가 가슴에 쿵 하고… 운명적인 만남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림 에세이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남해의봄날)를 펴낸 화가 최선길(63)씨가 천연기념물인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와 6년 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는 “이 나무는 최소 1년은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우나 더우나 한 주에 3~4일을 나가 그린 지 5년이 지났다.

그는 여전히 같은 나무를 그린다. 햇수로는 6년째에 접어들었다. “오롯이 한자리에 서서 풍파를 겪어내고 있잖아요. 천 년이란 긴 세월을 고스란히 나무가 담고 있는데 그깟 5년 그렸다고 생색내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직도 더 탐구해야 할 영역이 나무 안에 많이 있어요.” 그림과 함께 나무에 대한 단상을 글로 정리했다.

/작가 제공

최 작가는 “사생(寫生)을 통해 그림을 배웠다”고 했다.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주말에 야외에 데려가서 풍경화를 그리게 하셨어요. 생동감 있는 현장에서 그릴 때 생동감 있는 그림이 나온다는 게 제 작업 태도입니다.” 계절의 빛과 바람이 그의 그림에 녹아 있다.

은행나무는 들판에 있다. 겨울이면 “어마어마하게 냉혹한 바람”이 분단다. 이젤에 텐트 핀을 박아서 땅에 고정한 적도 있다. 챙이 넓은 모자, 방한화 등 갖은 도구를 동원해 현장성을 고집했다. “저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고, 작가의 철학도 녹아 있어요. 디지털 시대지만 그래도 회화라는 것엔 살아 있는 생생함이 있어야 한다고 무식한 고집을 부린 것이지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같은 책에 수록된 최선길의 2020년작. 109x79cm./남해의봄날

그는 나무를 통해 ‘본다’는 말을 새롭게 깨쳤다. 그는 “어느 날 나무 아래 앉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이미지가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며 “내가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가 내게 보이는 것이구나 알았다”고 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흰 눈옷을 입은 나무는 그렇게 흰 불을 사르고 우뚝 서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는 보이지 않게 불태워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나무와 마주 앉아 자신을 불태우고 있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