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의 시대
수잰 오설리번 지음|이한음 옮김|까치|364쪽|2만2000원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천식 진단을 받은 사람은 48% 증가했다. 미국의 암 환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고 추정되며 영국의 치매 환자 수도 기록을 경신했다. 우리는 자폐증, ADHD, 우울증 및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 사례가 급증한다는 뉴스에 익숙하다.
현대인이 예전보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식별하는 의학 기술이 발전해서일까? 영국 신경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세 번째 가능성을 제시한다. “딱히 질병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경계선에 놓이는 증상을 질병이라고 확고히 진단을 내리고, 정상적인 범위에 놓인 차이를 병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통계는 평범한 인생 경험, 신체적 결함, 슬픔과 사회적 불안을 장애라는 범주에 집어넣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점점 더 병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것을 병이라고 치부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의학의 발전과 사회적 변화가 과잉 진단과 과잉 의료화라는 두 가지 현상을 급증시키고 있다”면서 이로 인한 문제점을 짚어 나간다.
원인 불명의 신체적·정신적 증상으로 고통받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당연히 병명을 진단받길 원한다. 뭐가 문제인지 사람들이 물을 때 명확히 답할 수 있고, 그 진단명으로 환우회 등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치료 가능성도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진단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바람에 삶이 영구히 바뀌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한다. “진단을 확인하기 전에는 여전히 어떤 미래도 가능하지만, 확인하고 나면, 미래는 한정된다. 확실히 아는 것이 불확실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저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향후 발병 여부를 알아내는 예측 유전 검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건강 문제가 생기기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하지만, 아직 건강한데도 ‘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불안 속에서 살도록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근육이 제멋대로 씰룩대면서 인지 장애를 일으키는 헌팅턴병은 예측 유전 검사를 받는 이가 많은 대표적인 질병이다. 현재로선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이 병은 유전자 하나에 일어난 오류로 생기는 단일 유전자 우성 장애로, 자녀가 부모에게 그 유전자 변이체를 물려받을 확률은 50%다. 저자가 인터뷰한 발렌티나라는 여성은 스물여덟 살에 어머니가 헌팅턴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신체 이상 증상이 나타난 20년 후에야 예측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희망 때문이죠. 검사를 받지 않으면 그 변이체가 없다는 희망을 품고 계속 살아갈 수 있어요. 희망을 품으면 먼 길을 갈 수 있거든요.” 검사 결과 발렌티나는 음성이었다. 발렌티나의 사례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치료 방법이 없는 병을 미리 알고 고통받는 것이 과연 좋은가?
APOE e4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상당히 높지만, 저자는 “알츠하이머는 치료제가 없고 현재 치료법이 이 병의 진행 양상에 아무런 차이도 가져오지 못한다”면서 “이 치매 유전자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치매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하게 살아간다면 어떤 이들은 전혀 불필요한 일을 겪는 셈”이라고 말한다.
어떤 질병은 질병이라 이름 붙였기 때문에 질병이 된다. 질병이라는 꼬리표는 환자가 어떤 치료의 부작용 등을 걱정할 때 실제로 증상이 나타나는 ‘노세보(nocebo) 효과’를 통해 우리를 병들게 할 힘을 갖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롱 코비드(Long Covid)’라 불리는 만성 코로나 증후군. 저자는 ‘롱 코비드’라는 용어가 의사가 아니라 코로나를 앓은 환자가 자신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longcovid라는 해시태그를 단 것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단어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외로움, 두려움, 피부 노화에까지 ‘롱 코비드’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롱 코비드를 둘러싼 논의는 충분한 과학적 논의 없이 소셜미디어에서 주류 매체를 거쳐 의학 문헌에까지 퍼졌다. 사회는 과학자들에게 한 걸음 물러나 롱 코비드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즉시 답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질병과 건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여러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 저자는 “성공과 완벽한 신체를 기대하는 문화에서 진단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고 말한다. “진단은 명백히 아픈 사람을 위해서 남겨두고 차이와 불완전함을 더 관용적으로 봄으로써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원제 The Age of Diagno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