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되면서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의 성격도 변했다. 전에는 가보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매체였다. 이제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퇴사하고 유럽 인문 기행을 떠난다든가, 치앙마이에서 히피처럼 지내며 ‘힐링’된다든가. 그러면서 여행 에세이는 여전히 초보 작가들에게는 데뷔 창구로, 유명인 저자에게는 사적인 면을 보여주는 작은 무대로 기능한다.

전미도서상 수상자인 배리 로페즈의 여행 에세이이자 회고록 ‘호라이즌’(북하우스)을 소극장 공연에 비유해도 될까? 세계적인 여행 작가라는 이름값, 번역서로 928쪽에 이르는 책의 분량, 남극 대륙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이르는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원로 배우가 아주 긴 시간 독백하는 1인극이라고 말이다. 낯선 공연이기는 하다. 여행 에세이에 흔히 기대하는 설렘과 흥분의 정서는 없다. 관광 조언도 없고 맛집 추천도 없다.

나는 이 책을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가 연상된다고 중간 소감을 적었다. 아름다운 문장이 통찰을 실어 나르지만 예리한 관찰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상념에 섞여 툭툭 끊기는 두꺼운 책이라고. 어떤 대목에서는 ‘어쩌라고? 여섯 번째 대멸종이 그렇게 걱정되면 당신부터 비행기를 덜 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발심도 일었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책장을 다시 넘기면서는 책의 주제가 여행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인류 문명에 대한 반성도 아니라고 느낀다. 죽음을 앞둔 저자가 자기 인생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정리하려 쓴 글이라 생각한다.

여행 에세이가 초보 작가에게 적합한 장르인 건 좋은 에세이가 보여줘야 할 작가의 개성이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행 에세이가 유명인에게 적합한 장르인 건 그가 ‘스타’라는 피상적인 기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개인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러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읽고 그의 인생을, 상처와 어둠까지 간접 체험할 수도 있을까. ‘호라이즌’은 그렇다고 말하는 답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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