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의 중국사-고추의 문화인류학

차오위 지음|윤지산 옮김|마르코폴로|282쪽|2만2000원

조상님들의 용기가 한 치라도 적었다면, 우리 식탁에는 허여멀건 김치만 올랐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고추’에 대한 조선의 첫 기록은 이수광이 1614년 편찬한 ‘지봉유설’. 책은 당시 조선인들이 고추를 ‘독’으로 여겼다고 전한다. 여러 주막이 고추의 맹렬한 맛을 섞어 질 나쁜 소주 맛을 가렸는데, 이를 마신 많은 이가 목숨을 잃어서다.

저자는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을 다양하게 오가며 고추와 뿌리 깊게 얽힌 중국과 주변국의 역사를 비교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고추는 중국에서 “귀족이 아닌 빈민가 이주민의 밥상”에서 피어났다. 16세기 남미 대륙에서 출발, 인도양을 거쳐 중국 땅에 닿았고, 처음에는 약재나 장식용 식물로 쓰였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중국 남서부와 후난 지방의 산지 지형과 습하고 더운 기후가 고추를 값싼 향신료이자 방부제로 변신시켰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엔 고추 특유의 붉은색이 투쟁과 노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저자가 한국의 매운맛을 다룬 시각도 흥미롭다. “매운 음식을 많이 먹는 국가는 보통 1인당 소득이 낮지만, 한국은 선진국 중 매운 음식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라며 “‘계급 격차와 경쟁의 압박’ 때문에 빚어진 현상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 압박감을 “한국인은 매운 음식으로 해소한다”는 진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