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승리
배대웅 지음 | 계단 | 384쪽 | 2만3000원
1887년 독일 베를린에 ‘제국물리기술연구소’가 생기기 전까지 전업 과학자는 많지 않았다. 각자의 생업이 따로 있었고, 직장에서 퇴근한 후 개인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했다. 일·에너지 국제 단위 ‘줄(J)’로 유명한 제임스 줄은 양조업자였다. ‘멘델 유전 법칙’의 그레고어 멘델은 가톨릭 사제였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은 백수였다. 이들이 과학에 빠진 이유는 부국강병을 위해서가 아니라 “궁금해서”다. 역사적으로 과학은 개인 호기심의 산물이었다. 근대 세계를 만들어낸 많은 자연과 우주의 원리가 사실은 개인 서재나 자택 실험실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산업혁명과 근대 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과학에 눈독을 들였다. 이 지식은 ‘돈’이 되고 국력을 좌우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때만 해도 국가와 과학의 관계가 얼마나 미묘한지 알지 못했다. 가장 앞서 움직인 건 독일이었다. 최초의 근대적 국가 연구소인 제국물리기술연구소를 세웠다. 연구소 설립 13년 만인 1900년, 베를린 대학 교수였던 막스 플랑크가 과학사를 뒤흔든다. 그는 제국물리기술연구소 동료들과 당시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흑체복사’(열 평형 상태의 흑체가 전자기 복사를 방출하는 원리)를 풀어낸다. 플랑크의 해답이 오늘날 유명한 ‘양자 가설’이다. 이는 뉴턴 중심의 고전 물리학을 양자 물리학으로 전환하는 과학사(史) 분기점 중 하나가 됐다.
국가와 재계가 지원했던 독일의 과학 문화는 “공기에서 빵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1913년 프리츠 하버는 공기 속 질소로 인공 질소 비료를 만들어낸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세계 식량 생산량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
영광은 여기까지. 국가에 종속된 과학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상상하지 못했던 괴물의 얼굴을 드러낸다. 국가가 만든 연구소들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사 연구소가 돼버린다.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는 아예 육군의 하부 조직이 됐다. 질소 비료로 인류를 기아 선상에서 해방시킨 하버는 공기를 다루는 천부적인 역량으로 독가스를 만들고 화학전 부대의 참모로 임명된다. 독가스는 지지부진했던 참호전을 단숨에 끝낼 수 있는 무기로 각광 받았다. 이에 맞서 연합군도 독가스를 개발한다. 결국 1차 대전에서 화학무기 사상자만 139만명에 달한다. 하버는 당시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화학무기야말로 전쟁을 단축하므로 오히려 인도주의적”이라고 말했다.
2차 대전에선 히틀러의 지휘를 받은 카이저빌헬름 협회가 무기 개발은 물론 나치 이념에 과학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맡았다. 물리학자는 항공기와 어뢰를 연구했고 생물학자들은 우생학에 동원됐다. 유전학 연구는 아우슈비츠에서 제공받은 혈액과 조직을 샘플로 활용했다. 베를린의 뇌연구소는 나치의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살해된 700명의 뇌를 자료로 삼았다. 1942년 하이젠베르크는 나치의 지휘 아래 원자폭탄 개발에도 착수한다. 이후 패망한 독일은 국토도, 과학도 폐허가 된다.
이는 독일만이 안고 있는 원죄가 아니었다. 미국도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이끈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포함해 2차 대전에서 원자폭탄 제조라는 국가적 목표에 과학자들 스스로가 달려들어 지식을 헌납했다. 영국군은 과학자들을 동원해 비밀 본부를 운영했다.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런 튜링의 나치 ‘에니그마’ 암호 해독 작전이 유명하다.
전쟁이 끝난 후 과학계는 자성하고 새 길을 찾는다. 1948년 카이저빌헬름 협회는 ‘막스 플랑크 협회’로 다시 태어난다. 위대한 물리학자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함이었다. 막스 플랑크 협회는 현재 세계 최고의 연구 기관 중 하나로, 이곳에서 노벨상 수상자만 31명 탄생했다. 평균 3.6년마다 한 명이 나온 셈이다.
협회는 더 이상 국가주의에 휘둘리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고 철저히 자율적이고 분산적인 구조를 만든 덕이다. 협회 산하 연구소들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연구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특히 연구 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분야에 집중했다. 임기가 짧은 정치인의 외부 간섭을 배제했다. “우수한 연구자에게 최대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하르나크 원칙’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세계 일류 ‘100년 연구소’들이 공유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2차 대전 패전 후 한때 해체 위기에 놓였지만 일본을 과학 강국으로 만들어낸 ‘리켄’(일본이화학연구소)의 원칙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다.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또한 개방과 자율성이 핵심이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과학 기술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기초과학의 역사가 짧다. 과학 연구는 주로 정부 주도로 이뤄졌다. 한국원자력연구소(195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1966년)는 산업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모두 국가가 진두지휘한 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연구소 발전 전략을 설계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R&D(연구·개발) 자율성과 미래를 묻는다. 부처 간 칸막이 연구, 정권 따라 달라지는 R&D 정책, ‘의대 공화국’이란 부끄러운 자화상을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