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지능

앵거스 플레처 지음 |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 | 392쪽 | 2만1000원

2000년대 초 미국 육군 특수부대는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젊은 신병들이 높은 IQ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 전략 계획, 리더십에서 기대 이하 성과를 내고 있었다. 특히 정신 능력이 취약했다. “수학 문제는 잘 풀어도 인생 문제는 풀 줄 모르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2021년 미 육군은 해답을 찾기 위해 한 인지과학자에게 연락했다. “우리 신병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까?”

◇미 육군과 협업한 인지과학자

미 육군의 연락을 받은 이가 이 책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다. 그는 인간의 사고·감정·창의성에 이야기(story)가 미치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왔다. 2021년 플레처는 그간의 연구를 종합해 ‘고유 지능(Primal Intelligence)’이란 개념을 명명했다. 인간에게는 인공지능(AI)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고유의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플레처는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특수부대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비정규 훈련 시스템과 결합했다. 군에서 말하는 VUCA, 즉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상황에서 현명하게 행동하도록 뇌를 훈련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요원들은 혼란을 민첩하게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1년간의 공동 연구 끝에 육군 비정규전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에 이 훈련법을 전달했다. 그다음 군은 이 훈련법을 육군 리더십 과정인 지휘참모대학으로 가져갔다. 150명 이상의 고위 장교를 대상으로 과학 실험을 했다. 육군 평가 지표에 따르면, 이 훈련은 창의적 문제 해결 점수를 보통에서 우수로, 우수에서 최우수로, 최우수에서 탁월로 끌어올렸다. 플레처는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미 육군에서 훈장을 받았다.

이쯤 되면 이 훈련법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훈련법을 낱낱이 일러주는 대신(그랬다면 국가 기밀 누설일 수도 있겠다) 미 육군 훈련에 접목시킨 자신의 이론, 즉 고유 지능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내 안에 잠든 고유 지능을 다시 작동시키는 법과 이를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다.

삶은 변동성이 크고 불확실하기에 적은 정보로도 작동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하다. 이때 고유 지능(직관·상상력·감정·상식)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것

플레처가 보기에 현대사회는 ‘지능’을 잘못 정의했다. IQ 테스트를 비롯해 21세기 교실에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지능은 곧 ‘논리’다. 그러나 저자는 묻는다. “논리를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생각할까? 인간이 지닌 본연의 사고방식은 무엇일까?” 플레처에 따르면 인간 뇌에는 비논리적 지능이 있다. 직관·상상력·감정·상식이라는 네 가지 고유한 능력이다.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 즉 AI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고유 지능은 빛을 발한다. “번뜩이는 통찰력”은 주로 예외적인 정보에서 온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을 차근차근 묻는 습관이 예외적 정보에서 통찰을 얻는 직관을 길러준다. 플레처가 특수부대 교관들과 대화해 알게 된 또 하나는 “훈련된 상상력”이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훌륭한 계획이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다양한 경로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상은 “확실한 전략과 무한한 전술”을 가능하게 하는 무기다.

감정은 내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다. 위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두려움, 분노, 수치심 등)은 중요한 신호다. 예컨대 짜증이나 분노는 ‘계획이 깨지고 있다’고 뇌가 경고하는 것이고, 두려움을 느낀다면 ‘계획이 이미 깨졌다’는 뇌의 경고다. 이 신호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AI는 만능이 아니다. 챗GPT는 때때로 거짓말도 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AI는 과거 데이터나 경향에서 추론해 지식의 빈틈을 메운다. 그러나 인간은 ‘모른다’는 사실을 시인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경험상 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상식이다. 정확한 데이터가 부족하고 논리가 붕괴되는 불확실한 변화의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이 원시 시대부터 발휘해 온, 오래토록 인간의 생존을 책임져 온 고유 지능에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