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하의 첫 시집 ‘첨벙 다음은 파도’(창비)에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화자들이 거듭 등장한다.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시드볼트’). 목적지가 없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방향감각 같은 건 없”(‘야광 인간과 손 맞잡고 걷기’)다고 말하며 마치 형벌처럼 불분명한 걸음을 이어가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잃은 세대의 그로테스크한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은 재난과 파국으로 점철된 “잿더미”(‘거기에서 만나’) 같은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기묘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모든 공룡들의 무덤이라면 나는 이름 모를 커다란 뼈 위에 독채를 지어 살고 있는 거겠지”(‘우리가 잠깐 죽었을 때’)라는 문장처럼, 시집의 세계는 이미 오래전 멸종한 것들의 잔해 위에서 겨우 버티는 삶의 공간이다. “지옥에는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벌이 있었지/관객 앞에서 몇십 시간이고 말을 해도 아무도 웃지 않는 무대였어”(‘올나이트 스탠드 쇼’)라는 구절은,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일상의 지옥 같은 현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오산하의 시가 진정 독특한 이유는, 절망을 비관으로만 말하지 않고 파국의 끝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고 싶어”(‘수목’)라는 시집의 첫 문장처럼, 농담은 희망 없는 종말의 세계 속에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언어이다. “여기 망가지고 짓이겨진 기쁜 우리가 있다”(‘빈 병 줍기’)는 대담한 고백은, 무너진 잔해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죽지 않는 마음’(‘굿것’)을 구제하기 위한 유머의 기술이다. 그 유머 속에서 시인은 절망의 끝에서도 놓을 수 없는 무언가의 잔류, 혹은 아직 소멸하지 않은 생의 감각을 호소한다. “얘들아//양손 가득 움켜쥔 것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이후의 세계에서’).
그 무언가를 움켜쥔 채, 그들은 다시 세계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누가 먼저 바닥과 가까워졌는지/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첨벙 다음은 파도”(‘wave’). 침몰하는 세계의 중심에서 오산하는 기이한 언어와 유머, 그리고 말의 리듬으로 다시 첨벙 뛰어든다. 그리고 그다음, 언제나 다시 파도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