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완벽주의자
엘런 헨드릭슨 지음|문희경 옮김|어크로스|440쪽|2만2000원
미국의 한 연구 기관이 2003~2006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자살 사례를 추적했다. 연구자들은 청소년 자녀를 잃고 비탄에 빠진 부모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 응한 부모 중 62%가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가 완벽주의자였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완벽주의와 관련된 자살은 아무런 사전 징후 없이 발생한다고 결론 내렸다. 많은 부모가 자녀가 고통받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녀들은 주변 모두에게 고통을 숨겼지만, 사실은 자기만 없어지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이 연구 결과를 예로 들며 “완벽주의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해도 이토록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모든 형태의 완벽주의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성실한 완벽주의자들은 개인으로서도 성장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완벽주의가 지나치게 경직된 형태로 발현될 때, 이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백설공주’의 성공 이후 후속작들이 그만큼 성과를 못 내자 자책하며 평생을 고통 속에서 보낸 월트 디즈니가 대표적인 ‘경직된 완벽주의자’다.
일리노이주립대 심리학 교수인 레이먼드 버그너 박사에 따르면, 경직된 완벽주의자들은 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비난한다. 자신을 깎아내리면 남들이 ‘아니, 넌 정말 대단해’라며 격려해 주기 때문. 타인의 비판을 피하고, 사람들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가혹하게 대하기도 한다.
완벽주의의 장점은 취하되 유연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나의 가치관을 먼저 떠올리라”고 조언한다. 일·성과·평가와 ‘나’를 과도하게 동일시하지 말고 관계·정의·우정·돌봄 같은 가치관을 우선시하면, 눈앞의 과제가 기나긴 삶의 일부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연민을 갖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며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한 독자들에게 권한다. 원제 How To Be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