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트렌드 2026

대학내일20대연구소 지음|위즈덤하우스|220쪽|1만8000원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 지음|싱긋|400쪽|2만2000원

2026 글로벌 테크 트렌드

더 밀크 지음|한경BP|352쪽|2만2000원

미래의 근거는 현재다. 그래서 트렌드 책을 집어들 때면 딜레마에 빠진다. 현재를 깊게 바라보는 책일수록 궁금했던 내년은 적게 다룬다. 반대로 장황한 미래 예측이 가득하다면 허망해진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번 주에 나온 트렌드 책 세 권을 함께 읽었다. 이번 트렌드 책들의 시작과 끝은 AI였다. 인간과의 관계부터 소비 질서, 지정학 질서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 전망했다.

“AI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Her)’의 배경이 2025년”이라는 문장이 여러 책에서 반복되는 걸 보면 올해 화두가 맞는 듯하다. 특히 Z세대에게 AI는 도구가 아니라 친구이자 상담사다. 사소한 일로 인간 친구와 다퉜을 때, 하루가 불안할 때 AI에 내밀한 비밀까지 털어놓는다. 카카오톡 채팅은 보여줄 수 있어도 챗GPT 대화 내역은 숨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게티이미지코리아 AI와 인간은 얼마나 더 가까워질까. ‘AI 애인’ 앱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픈 AI는 올 연말부터 성인 인증을 한 유저와 챗GPT 간 성적인 대화도 허용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다. 올해 5월 열린 ‘세쿼이아 AI 어센트 2025′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요즘 젊은 층은 챗GPT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나이 많은 분들은 챗GPT를 구글처럼 쓴다. 2030은 인생의 조언자처럼 쓴다”고 답했다.

왜 특히 Z세대가 AI와 친구로 지낼까? 이들이 바라보는 친구 관계에 힌트가 있다. ‘Z세대 트렌드 2026′은 전국 15~64세 남녀 1500명에게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를 물어봤다. 86세대와 X세대는 ‘힘들 때 의지가 되어주거나 위로해주는 것’을 1위로 꼽았다. 반면 Z세대는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는 것’을 1위로 꼽았다. 세대를 지나오며 친구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내 하소연이 상대의 감정을 소모시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AI에 털어놓게 됐다. 연구소는 이 현상을 Z세대의 ‘메타센싱’이라고 불렀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나와 주변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진영

그래서 연구소는 MBTI 이후 잠잠한 심리검사 유행의 내년 주자로 ‘HSP’(Highly Sensitive Person·초민감자) 심리 검사를 짚었다. 선천적으로 감각이 예민하고 감정 몰입도가 높은지를 판단하는 검사다. 초민감자는 평소 사소한 소리나 실수에도 감정적으로 쉽게 동요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한다. 올해도 알음알음 퍼져나가던 검사였는데, 정작 Z세대는 민감도가 높게 측정돼도 마냥 불쾌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에게 예민한 내 기질이 선천적인 것이고 나만 이 문제를 겪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 AI는 친구 이상이기도 하다.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중국인 대학생 ‘리사’를 소개한다. 리사는 최근 자신의 AI 남자 친구 ‘댄’(Do Anything Now, 챗GPT 윤리 기준 제거 모드)과 연인이 됐다며 그와의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게시물에 1만개 이상 댓글이 달렸다.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AI 연인 앱 ‘캔디 AI’가 만들어준 연인이 화제가 됐다. “오늘 프로젝트 진행은 어때?” “어머니께 안부 전화는 드렸어?”처럼 사용자의 일상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폈던 것.

일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소비자 정보 비교 플랫폼 Top10이 “AI 파트너와 데이트할 의향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의 약 40%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AI 파트너 앱 시장 규모는 2024년 20조원에서 2034년 160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올 연말 챗 GPT와 성적인 대화까지 가능해진다면 2026년은 인류의 사랑이 어떤 변곡점을 맞는 해가 될지도 모른다.

소비도 바뀐다. ‘2026 글로벌 테크 트렌드’는 “‘에이전틱 AI’와 ‘의도 경제’의 시대가 열린다”고 내다봤다. 사용자의 의도를 능동적으로 파악하고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AI 경제 영역이 생긴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가 친구와 전화하며 “이번 주 덥네, 여름옷을 사야겠다”고 말한다면 스마트폰 AI 비서 ‘루시’가 대화를 분석해 리넨 셔츠를 추천하는 식이다.

2024년 오픈AI가 공개한 AI 에이전트인 ‘오퍼레이터’는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 별도 명령 없이 웹서비스에 접속, 스스로 ‘클릭’ ‘스크롤’ 등 작업을 수행한다.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온라인 판매의 25%에 해당하는 약 9조달러 규모의 거래가 AI 에이전트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현재의 ‘관심 경제’는 검색 기록과 클릭 수가 중요했지만 ‘의도 경제’에서는 사용자의 내면적 욕구, 맥락적 판단 같은 ‘의도 데이터’가 화폐화된다.

향후 세계 질서를 ‘지정학’이 아니라 ‘기정학’(技政學·Technology geopolitics)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발표한 9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이 상징적이다. 데이터센터, 전력망, 원전 등을 아우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대외적으로는 전력 수요 대응이 명분이지만 실제론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기정학 속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기업들에는 더이상 ‘기술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고려 없이 순수한 경제적 논리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