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당시로선 낯설고 실험적이었던 소설 서술 기법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의식의 흐름’은 결과적으로 그리 적절치 못한 ‘비유’였다. 이 용어가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연상 작용 탓에, ‘의식의 흐름’은 서술자가 자기 내면에 떠오른 두서없는 생각을 나열한 맥락 없는 글이라는 오해가 양산된 것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보면, 이 소설이 대단히 치밀하게 구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곧 의식의 흐름 기법이 다른 어떤 소설 작법보다도 더 정밀한 설계에 의해 구현됨을 뜻한다. 그것은 무질서해 보이도록 의도되었을 뿐, 전혀 무질서하지 않다.
1923년 6월의 어느 수요일 아침,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그날 저녁 자신의 집에서 있을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외출한다. 이렇게 시작된 소설은 당일 저녁 파티가 끝날 때까지, 만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담고 있다. 그사이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49명인데, 특이하게도 작가는 댈러웨이 부인이 거리에서 스치는 모든 사람, 그리고 파티에 참석한 모든 손님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이 집요한 명명하기는, 삶의 매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소중하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인물들은 단지 한 사람의 시선에 따라 해석되는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에 대해 관찰자이자 피관찰자인 상호적 존재다. 소설 속에서 이름이 없는 인물은 둘뿐인데, 한 명은 리젠트 파크에서 구걸하는 노파고 다른 한 명은 영국 총리이다. 그들이 각각 사회의 최하층민과 최고 권력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소한 제목과 달리, 이 작품은 여성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크고 무거운 주제들, 전쟁, 계급, 전통과 편견, 속물 근성과 허위 의식 같은 것들을, 여러 인물을 통해 두루 다룬다. 그런데 그걸 겨우 열 몇 시간에 담아낸다. 바로 이것이 의식의 흐름 기법의 묘미다. 우리네 인생 이야기는 쓰기에 따라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잘 짜인 단단한 한 편이 될 수도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수많은 인생 이야기들에 깃든 차이와 반복의 패턴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삶은 유한하지만 또한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데는 하루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준다.